도자기는 만병이자 곧 보주
영기문, 만병 안 가득찬 물이
넘쳐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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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철화백자 포도문 항아리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도자기’가 ‘보주’라고 곧바로 말하면 대중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만병’을 통해 보주에 이르도록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제 바야흐로 도자기 세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려 한다. 도자기를 우선 만병으로 인식하게 되면, 보주도 인식하게 되며 다른 모든 문제가 풀려진다. 

매우 오래전, 학문과 예술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나를 사로잡은 작품이 한 점 있었으니 바로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철화백자 포도문 항아리였다(도 1). 국보 제107호인 이 항아리는 높이 53.3센티미터로 당당한 모습이고 회화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경기도 광주에 설치했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원에서 궁실용 최상의 백자가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이 어떻게 해서 이화여대박물관에 소장되었는지 그 극적인 과정을 알려면 인터넷으로 금방 알 수 있다.

30년 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동양 도자기 전공자로 나의 친구인 로버트 마우리 교수를 ‘하버드 스퀘어’에서 만나 식사를 같이하며 묻기를,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자기 작품을 한 점 들라면 어느 것을 말하겠는가 물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나의 기대대로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철화백자 포도문 항아리를 꼽았다. 물론 만병이나 보주를 전혀 모를 때였다. 왜 그러냐고 묻지는 않았고 서로 침묵을 지켰다. 청화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철화가 나타내는 강력한 표현방법을 도공과 화가는 취했다.

도자기를 수많이 보아 왔지만 이 작품처럼 나의 마음을 압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러 번 그 작품을 돌려가면서 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사진 촬영했었다. 그러나 전혀 포도문을 파악할 수 없었다. 지난 10월 11일 화창한 가을날, 그 작품을 연재에 글을 쓰기 위해 찾았다. 그런 목적으로 만나보니 비로소 만병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더 나아가 보주로 보였다. 비록 뛰어난 솜씨로 궁중 도화서의 어느 화가가 그렸음직한 포도 회화를 바라보니 이제야 포도문의 의문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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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1) 한줄기1의 포도줄기1의 끝부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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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2) 포도문 줄기1의 시작점과 전개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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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 포도줄기2의 끝 부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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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2) 포도줄기2의 시작점과 전개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포도 그림은 두 줄기 포도 가지가 항아리 입 부분에서 나와 오른쪽 방향으로 힘차게 휘몰아치며 나부끼고 있음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영기문의 속성인 순환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도 2-1, 도 2-2), (도 3-1, 도 3-2). 이미 도자기 연재 제8회(2021년 8월 2일자 신문)에서 고려청자에 표현된 포도가 현실에서 보는 포도가 아니고 보주임을 증명했으니 다시 정독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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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조선시대 포도문 병풍. 필자미상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17~18세기 철화백자에 붓으로 그려진 포도문은 기운생동하면 영기문의 차원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려면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평생 나의 관심을 끌어왔던 회화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포도문 병풍이었다. 한줄기 포도나무가 바람에 휘몰아치면서 긴 병풍의 단절적인 폭들을 개의치 않고 그린 작품이었다(도 5). 물보라를 일으키며 역시 휘몰아치는 모양이기도 했다. 왜 포도문 그림에서만 그렇게 표현했을까. 이렇게 붓으로 그려서 회화와 백자의 그림을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회화사 연구자들이 다룬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백자에서는 철화(鐵華)라는 거친 표현방법으로 붓으로 그렸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며, 청화(靑華)로는 그런 표현이 어려웠을 것이다.

어제 살펴보니 딩딩한 항아리의 입 부분 두 곳에서 포도 넝쿨이 시작하여 매우 역동적으로 오른쪽으로 휘날리듯 표현했다. 그렇다. 만병 안의 대우주의 기운이 만병 안에 가득 찼다가 입을 통해 두 줄기 영기문,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기문으로 변모하여 밖으로 넘쳐나는구나. 이에 이르러 내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평이 매우 넓어짐을 느낀다. 도자기 전 표면에 상감기법으로 아로새기든, 붓으로 그리든 표면의 모든 영기문은 바로 만병 안에 가득 찬 물이 형상화하여 넘쳐나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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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1) 청자상감포도문 표형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그러나 두 시대의 격차의 매듭을 풀어줄 수 있는 ‘고려청자 상감 포도문 호리병’이 있어서 그 한 점을 더 분석해 보기로 한다. 이 고려청자 포도문은 매우 드물게 영기문으로 표현한 것이어서 백자의 포도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도 4-1). 이 고려청자를 모두가 호리병이라 부른다. 그러나 호리병이 아니다. 항아리 모양 만병, 즉 보주에서 둥근 만병 즉 보주가 나오는 광경이다. 그 연이은 화생의 과정을 이 작품이 매우 분명히 웅변해 주고 있다. 즉 두 부분이 따로따로 영기화생하고 있지 않느냐. 즉 맨 밑 부분의 꽃잎모양에서 항아리, 즉 만병이 화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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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2) 밑 부분의 영기문에서 만병이 화생(왼쪽)과 (도 4-3)  만병 속에 가득 찼던 물이 형상화하여 표면에 표현된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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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4) 만병 속에 가득찼던 물이 형상화하여 표면에 표현된다(왼쪽). (도 4-5) 둥근 보주가 따로 화생하며 큰 만병에서 나옴(가운데).  (도 4-6) 만병 속에 가득찼던 물이 형상화하여 표면에 가득히 표현된다(오른쪽).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0.14

그리고 이어서 둥근 만병이 띠로 화생하여 있으니 호리병이 아니다. 조형예술품에는 현실에서 보는 사물은 표현하지 않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니 호리병으로 보여도 그것은 호리병이 아니다(도 4-2, 4-3, 4-4, 4-5, 4-6). 표면에 표현한 포도 잎 모양 영기문은 마치 연잎의 중앙에 보주 표현이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 포도 잎 모양은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어서 이런 영화된 포도 잎에서도 여래와 보살이 화생할 수도 있다. 

이제 고려청자를 한 해 넘어 다루면서 고려청자에 표현된 꽃들 이름이 모두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 모란문은 모란이 아니요, 연화문은 연꽃이 아니요, 국화문은 국화가 아니라는 것을 다루다가 이제 포도문에 이르렀다. 이미 조형예술에 표현된 모든 것은 현실에서 본 것은 하나도 없다고 증명하며 선언하지 않았느냐. 오랜 세월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조선시대 포도그림 병풍의 불가사의한 표현 방법이 풀리자, 철화 백자 포도문의 감동적인 표현의 비밀이 풀리고 이어서 고려청자의 포도문도 달리 보인다. 

고려청자는 천하제일이라면, 철화청자도 천하제일이요, 조선의 분청사기도 천하제일이요, 청화백자나 철화백자도 천하제일이요, 그러니 그 모든 것은 풀어낸 과정도 천하제일이 아닌가. 그 천하제일 작품들은 모두 현실을 표현한 것이 아니요, 영화된 세계인 가장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이어서 세속적인 사고와 시각으로 어찌 풀려지겠는가. 이제까지 정립하여 왔던 <영기화생론>으로 이 모든 천하제일이 완벽하게 풀려지고 있으나, 조선시대의 철화백자 포도문 항아리라는 만병과 여의보주를 만나 비로소 이론적 완성을 이루는구나.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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