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선제공격 아니지만 ‘대응’ 수준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
美 ‘핵 선제 사용금지’ 비동의… 핵무기 관련 무력 확장 방침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버튼을 누를 것인가가 최근 초유의 관심사이다. 미국 등 서방 매체들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이후 핵무기 사용 위험성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일제히 보도를 쏟아냈다. 이와 함께 핵무기로 인한 피해, 안전지대 등 다양한 각도에서 핵무기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쏟아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수세에 몰리게 되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러시아 지도부가 핵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추정이 핵시위 공포로 확산한 모양새다.
언론에서 핵 위험성에 대한 경고 보도가 계속되자 러시아 외무부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으로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설명해야 한다”면서 러시아 매체 스푸트니크와 지난 11일(현지시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핵무기 사용을 하는 데 있어 감정적인 결정이 아닌 러시아 핵 독트린(핵 보유국이 핵무기와 관련해 정책상 공식적으로 표명한 원칙)에 따른 원칙이 적용된다는 설명이었다. 이 매체는 ‘세계가 핵 종말로 향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가 있다’다는 제목의 12일 보도에서 서방 매체발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러시아의 핵 독트린이다. 러시아는 지난 2020년 6월 ‘러시아연방 핵억제 국가정책의 기본’ 문서를 발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은 4가지 조건 곧 ▲러시아 또는 그 방위조약국의 영토를 공격하는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수신한 경우 ▲러시아 또는 그 방위조약국의 영토가 핵무기 및 기타 유형의 대량살상무기로 공격 받은 경우 ▲미작동시 핵무력 대응이 시행되지 않을 수가 있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국가 또는 군사시설에 대한 적의 가해가 있을 경우 ▲재래식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침략으로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규정한다. 이 정책은 전술핵과 전략핵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핵무기에 적용된다. 요컨데 러시아가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셈인데, 각 조항에 대한 적용은 해석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핵 선제사용 금지’ 동의 안 하는 미국
러시아는 오히려 미국이 핵무기의 선제공격이 가능한 핵 독트린을 갖고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였던 2018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를 발간했다. NPR은 핵무기에 대한 정책을 설명하고 국가에 대한 핵 위협 목록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NFU, No First Use)’을 공식 표명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2010년도 NPR에 NFU 방침을 검토했다가 우방국 및 동맹국들의 우려와 국내적 신중론에 의해 철회된 적이 있다. 이 문서의 54페이지에는 소형 핵폭탄에 대한 언급과 핵무기 관련 무력 확장에 관한 내용이 언급됐다. 또 핵무기를 투하하기 위한 이중 능력 항공기(DCA) 업그레이드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와 협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 문서에서는 이처럼 미국이 핵무기 확장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위협 국가로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이 언급됐다.
지난 3월 바이든 행정부도 최신 핵 독트린을 제출했지만 대부분 비밀에 부쳐졌다. 하지만 미국이 NFU를 선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인도 NFU 유지… 영국‧프랑스‧파키스탄‧북한 ‘사용 가능성’
다른 핵보유국의 핵 독트린은 어떠할까.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와 미국 외에도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스라엘(추정)이 핵무기 보유국이다. 중국과 인도는 NFU을 유지한다.
파키스탄은 수십 년 동안 민간 및 군사 지도자들이 공격을 받으면 “무기고에 있는 어떤 무기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유사한 정책 채택을 거부해왔다.
프랑스의 정책은 모호하다. 공식 원칙은 ‘핵무기가 적의 재래식, 화학, 생물학 또는 심지어 사이버 공격에 직면하는 것을 포함해 국가의 중요한 이익을 보호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영국에서는 지난 20년간 국방장관들이 ‘핵무기를 첫 타격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북한은 지난달 핵무기를 ‘주권, 영토 보전과 기본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을 선언했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은 ‘삼손 옵션’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재래식 방어가 실패해 나라가 파괴될 위기에 처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때 이 옵션을 고려했고, 1980년대 점령된 골란고원에 핵 지뢰를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세계의 주요 핵보유국들은 우크라이나와 대만 등 어떤 전략‧전술적인 변화가 발생해도 최소한 ‘아마겟돈’을 첫 번째 수단으로 고려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은 지난 1월 공동성명에서 ‘무허가 또는 의도하지 않은 핵무기 사용을 막기 위한 국가적 조치’를 유지하고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성명에서 각국은 “우리는 핵전쟁은 승리할 수 없으며 결코 싸워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면서 “핵 사용은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핵무기가 계속 존재하는 한, 방어 목적을 수행하고 침략을 억제하고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약속했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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