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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정상들이 2022년 10월 7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비공식 EU 정상회의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EPA)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 

대결구도의 ‘팍스 아메리카나’

유럽-러 관계 악화 결과 ‘전쟁’

통일전선 회복, 러도 파트너로

미-러 ‘양자택일’ 양상 버려야

<편집자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주류 국제사회에서의 여론은 우크라이나와 미국‧서방과 관련해서는 응원하고 이겨야 할 우방국으로, 러시아는 퇴치해야 할 적국으로 그려지는 양상이다. 물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의 시작으로 전쟁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치 선악구도식 양자택일 논리로 각국의 국제관계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지구촌은 경제적으로 고립돼 살아갈 수 없는 글로벌 시민사회가 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우 전쟁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유럽 시민사회에서는 현 전쟁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스페인에서 사업을 하는 벨기에 국적 위르겐 게르마이스(Jurgen Germeys)가 이와 관련한 기고글을 보내와 본지는 이를 번역해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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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게르마이스

벨기에 국민들에게는 ‘화합은 강하다’라는 아름다운 신조(모토)가 있다. 이 모토는 프랑스어로 ‘L'Union fait la force(연합은 힘을 갖는다)’, 네덜란드어로 ‘Eendracht maakt macht(통합이 힘을 만든다)’, 독일어로 ‘Einigkeit ist stärke(단결은 강하다)’로 각각 표현된다. 

이 모토는 벨기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유럽을 정치적, 경제적 연합으로 만든 근원이기도 하다. 벨기에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겪었던 투쟁은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 가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뭉치면 필연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보여줬다. 작은 나라인 벨기에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분열이 있지만 결국 하나가 됐다.

유럽연합(EU)으로 가는 첫 단계는 석탄·철강의 생산 및 판매를 위해 창설한 공동관리 협력기구(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창설이었다. 유럽 각국은 이를 통해 당시 모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던 석탄과 철강에 협력의 초점을 맞췄다. 

1950년 5월 9일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은 프랑스와 서독의 철강·석탄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단일기구의 설립을 제안했고 그 계획안은 ‘쉬망 계획(Shuman-plan)’으로 불렸다. 쉬망 계획의 직접적 성과는 독일과 유럽 국가 간의 관계를 회복한 결과였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을 징벌하는 것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교훈을 남겼다. 각 국가가 경제적으로 번성할 수 있도록 하려면 자원에 대한 접근에 있어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경쟁보다 낫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문제가 존재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 수준이다. 다양한 초강대국이 경제적으로 앞서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희귀 자원에 대한 접근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비협력적 자원 확보 경쟁은 전 세계적으로 분쟁을 일으키면서 매번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우리가 경험한 전쟁은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었다.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에서, 러시아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각각 챔피언이었다. 이런 갈등은 현실로 불거질 필요가 없었지만 대결구도로부터 만들어진 사고방식과 공포정치는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팍스 브리타니카에 뒤이은 국제 평화 질서를 이끈 것을 뜻한다. 그 뒤 1990년대에 전쟁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인도적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정당화하고 피해 지역에서 점령군을 유지했다.

전후 유럽이 이런 다양한 분쟁에 어떻게 참여해왔는지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 이상 세계 강국이 되려는 야심을 유지하지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투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을 뿐 세계지도에서 자신의 역할을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럽의 국내총생산(GDP)은 다른 많은 초강대국과 동등하지만, 독립적으로 주요 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도주의적 근거에 따라 행동해왔다.

무엇보다 유럽은 유럽이 자체 의제를 설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유럽이 ‘공유지의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은 이런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 각 국가는 개별적으로 자국의 이익에 중점을 두고 서로 협력하는 데서 발생하는 이점은 소홀하게 여겨왔다. 유럽은 유럽에서 더 많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협력하지만, 유럽의 사고 방식에는 진정한 비전은 부족하다.

유럽은 개개인을 바라보지 않고 여전히 민족주의, 부족주의, 인종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글로벌 정치에서 통일전선으로 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는 작은 주권국가가 민주적 유럽으로 대표되는 통일전선보다 낫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사실임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다른 면을 보여준다. 공통의 기반을 찾고 더 나은 세상에서 통일전선으로 일하는 것이 진정으로 전진하고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우크라이나 분쟁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유럽이 주도적으로 러시아와 소통하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 역할을 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갈등이다. 이미 2014년부터 이슈가 돼 온 사안이다. 무의미한 전쟁에 목숨을 던지기보다 더 나은 해법을 찾기 위한 외교 공간이 무려 8년간 있었다. 물론 이 갈등이 역사와 지정학적 움직임, 경제적 상호의존성 등 매우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유럽이 솔로몬 지혜를 발휘할 때를 놓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킨 특정 리더십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증오를 부추기는 대신 국민 개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강력한 경제를 건설할 수 있도록 러시아와 협력하는 솔루션을 추진해온 바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좋은 기회를 놓쳤다. 

유럽이 통일전선을 되찾지 않는 한, 그래서 부족주의(tribalism)가 유럽 정체성의 일부인 한, 유럽 국경에서의 불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러시아와 협상하고, 더 이상 둘 중 하나를 선호한다며 ‘양자택일’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매우 강력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러시아는 유럽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자국 국민을 위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세계가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갈등의 핑계가 아니라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다.

# 팍스 아메리카나 #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럽연합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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