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 박인숙 회장 인터뷰

▲ 박인숙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 회장. ⓒ뉴스천지
“3번 쓰러지기도 하고, 컴퓨터 배운다고 급히 나가려다 교통사고를 당해 3주 동안 입원하기도 했어요. 부르는 이 없어도 무슨 일만 있으면 여기로 뛰어옵니다.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야만 나라가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후계자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박인숙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 회장은 2002년부터 현재까지 8년 동안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독립기념관으로 출근한다. 기념관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설명해주기 위해서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박 회장은 그토록 이 일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민족의 역사뿐 아니라 유관순의 얼을 알리고 계승하고자 동분서주하는 박 회장은 사실 지난해 고희연을 맞았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70세가 넘은 고령으로 보지 않는다. 특히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가 12살 흑백사진의 유관순을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가 그 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서 전하곤 한다.

“12살 때 이화여중에 입학했습니다.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났던 그 해인데 학교에서 우연히 유관순 열사의 흑백사진을 보게 됐거든요. 그 때 (유관순 열사가) 고문당한 것과 어린소녀가 까무러쳐도 수백 번 일어나자마자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그 모습에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저런 소녀가 있을 수 있을까. 나도 거기 가서 사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는데 거기가 어딜까’ 하고 어린 마음에 각인된 것이 있었어요”

12살 박인숙은 그렇게 유관순과의 첫사랑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는 서울대 사범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그의 바람대로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있는 충청남도 천안에서 영어교사를 하게 됐다. 그는 걸 스카우트 지도교사를 하며 충남에서 치러지는 어떤 대회를 나가도 ‘유관순 열사의 얼’로 1등을 했다고 자부했다. 또 그렇게 가르쳤던 학생들이 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어 삶 속에서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매년 ‘우리문화 영어로 말하기 대회’와 ‘유관순 글짓기 대회’ 등을 개최해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는 2005년 미국 교포로부터 영어글짓기 심사 요청을 받고 나갔다가 교포들 속에 잠재된 민족의 얼을 확인하고 동서양 어디든 우리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민족의 한줄기 햇빛 유관순’이라는 유관순 영어글짓기 묶음집도 발간했다.

박 회장은 “요즘 영어 붐이 일어나 학부형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어떤 유익이 있나.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 하는 게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더군다나 영어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친다면 글로벌 시대에 나라 홍보와 국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의 흑성산 기슭에 세워져 있는 것은 유관순 열사의 혼이 서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박 회장. 박 회장은 그곳에서 머리로 이해하고 눈으로 보는 데 그칠 뻔한 관광객들에게 지금이 있기까지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눈물과 희생을 마음 속 깊이 느낄 수 있게 하는 다리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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