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대한민국은 정당 민주주의 국가로서 대의(代議)민주주의가 근간이다. 정당국가에서 여당은 정부와 함께 국정 운영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 못지않게 제1야당의 지위도 상당한 편이어서 국민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을 바라보는 요즘 국민의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 그것은 민주당이 최근에 보인 스스로의 행태에서 비롯된 일로 자초(自招)한 일이라 하겠다.

지난 19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나타난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초라한 성적표다. 웬만하면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로 제1야당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게 상례이건만 국민은 마음에서 야당 둥지를 밀어냈다. 그동안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정당’, 국민에게 버림받기 직전의 ‘불신정당’, 정권을 다시 찾을 의지도 능력도 없는 ‘불임정당’ 등 3불 정당이라는 말이 떠돌았는데, 이 말들은 선거 결과나 여론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국민의 마음이 민주당에 없다는 것은 여론조사기관이 5월 중순께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갤럽이 ‘안철수 신당 창당 시 정당 지지도’라는 여론조사 결과, 지지도 높은 순위로 치면 새누리당 29%, 안철수 신당(가정) 26%인데 비해 민주당은 12%에 그쳤다. 전통에 빛나는 민주당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에 비해 반타작밖에 안 되는 지지율도 놀랄 일인데, 지지자 중 38% 정도가 안철수 신당 창당 시에 빠져나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여론조사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결과를 믿지 않으려할 테고, 모집단 계층이나 조사 지문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한국갤럽은 국민여론을 전문으로 하는 노하우가 많은 여론조사기관이니 그 결과를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안철수 측에서는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을 공식 선언한 상태에서 연구소 이사장으로 최창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임명하는 등 정당 창당의 수순을 밟을 예상이다.

제1야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은 친박계로 무장한 여당 집행부를 상대하는 전략도 버겁고, 민심을 회복할 자구책도 없는 마당에 또한 안철수 신당과 야당 선명성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니 ‘위기’가 따로 없다. 앞뒤가 폭탄지대인 민주당의 살 길은 국민에게 야당의 존재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쉽지만은 않다. 변하지 않고서는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이나 내년의 지방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다음 대선에서도 정권을 잡을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민주당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명을 바꾸고, 반(反) 친노 세력의 좌장이기도 한 김한길 대표와 수도권 출신인 전병헌 원내대표를 선출했다. 대의원과 당원들은 그동안 문제가 된 친노중심의 정당 색깔에서 탈피하여, 강하고 선명한 야당이 되기를 바라는 결과였다. 최고위원 등 핵심 지도부를 구성하는 선거에서도 친노세력과 호남권 출신은 배제된 바, 이는 사상초유의 위기를 맞게 된 민주당을 재건하는 당원들의 강한 주문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 김한길호의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김 대표 등 지도부가 여당에 대해 적절한 견제구를 날리는 한편으로 명쾌한 협력을 통해 국리민복을 꾀해야 되겠고, 독자세력을 넓혀가는 안철수 신당과의 선명성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냉담한 민심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느냐 하는 게 주어진 관건이다. 무기력한 제1야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민주당을 굳건하게 재건해야 하는 책임이 신임 지도부에 안겨졌으니 혁신하는 길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는가.

그런 가운데, 민주당이 ‘민생진보 3대 정책비전’을 제시하는 등 당의 향후 경제분야 노선에 착수했다. 정책비전에서는 보편 복지의 심화, 함께 누리는 혁신적 성장 등 3가지가 담고 있고, 그 정책과제로는 법정노동시간의 준수, 재벌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와 조세부담률 제고 등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고 실추된 민주당의 위상과 명예를 되찾는 일이고, ‘수권예비정당’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민주당이 혁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걱정하는 정치학자 등은 우리나라의 양당 구조가 정치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정치의 거의 모든 제도가 양당 구도를 고착화 시키는 쪽으로 맞춰져 있는 게 큰 문제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양당 정치의 우산 아래 기득권을 보호받으려고 안간힘이다. 노력 없이 과실만 따먹겠다는 발상으로 원내대표마저 나서서 양당 정치가 좋다는 식의 식상한 말을 해댄다.

이제 곧 6월 임시국회가 열린다. 민생 법안의 처리도 중요하고, 국민 불신을 받는 구태 정치의 근본을 바꾸는 일도 시급하다. 국민의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휘둘러온 국회의원의 특권 등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잘못된 정치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여당보다 먼저 나서서 의원 보수를 대폭 줄이고,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등 큰 정치의 틀을 보인다면 어떨까? 그래야 국민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달라진 민주당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제1야당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해볼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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