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덕정에서 순교한 성 이윤일 요한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강수경 기자]그는 키가 크고 수염이 많으며 신심이 깊고 성질이 온순, 솔직담백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신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체포될 당시 이윤일 요한은 자신이 천주교신자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족 8명을 포함한 신자 30여 명과 함께 체포됐다. 추가 신자가 있느냐는 심문에는 한사코 더는 없다고 말하며 신자들을 보호했다.

그는 감옥에서도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천주교 신자라는 점을 확고히 말했고, 그는 결국 ‘사학괴수의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윤일은 사형을 당하기 전 옥에 남은 가족과 교우들에게 이별사를 남길 때에도 오직 성경 말씀을 강조했다.

“교형 자매들, 나는 지금 오주 예수를 따라 치명하러 대구 감영으로 갑니다. 여러분이 행여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천주께서 가르쳐주신 계명을 잘 지키고 열심히 살다가 나의 뒤를 따르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윤일은 1815년 충청도 홍주 출신의 태중 교우로 박해를 피해 경상도 문경읍 중평리에 있는 여우목에 살며 전교회장으로 지내던 중 1866년 병인대박해 당시 43세 때 30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체포돼 상주 감영에서 사형언도를 받았다.

1867년 1월 21일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순교했다. 1968년 10월 6일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됐으며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동료 순교복자 102위와 함게 성인으로 시성됐다.

1968년 12월 21일 성인의 유해를 미리내에서 성모당으로 이전했고, 1987년 1월 21일 제8대 교구장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가 성인을 교구 제2주보로 선포했다. 1991년 1월 20일 관덕정으로 이전 봉안하며 현재 대구관덕정 순교기념관 지하 성당에 그 유해를 모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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