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불교팝아티스트 즐거운 수행자 ‘미술(美術)’을 꿈꾸다
김영수 불교팝아티스트 즐거운 수행자 ‘미술(美術)’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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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수 불교팝아티스트의 작품 ‘윤회금지(NO SAMSARA)’


유턴금지표지판에 ‘윤회금지(NO SAMSARA)’란 글씨가 어우러져 있다. 원래 존재하는 것인 양 자리를 지키는 ‘엉뚱한’ 표지판이 실소를 자아내지만 이내 ‘윤회를 금한다’는 짧은 문자와 그림이 주는 압도적인 뜻에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언뜻 작가가 불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친(親) 불교적이다. 작가는 거의 매일 명상에 잠기고 초기경전을 열독하면서 자아성찰에 매진한다.

내면에 집중하는 삶을 십수 년간 살아온 까닭인지 얼굴엔 온화한 향이 가득하다. 상대방에게도 평온한 향을 전하는 그는 끊임없이 부처의 가르침에 비춰 자신을 탐구한다. 자아성찰로 비롯된 행복을 늘 경험하는 작가는 또래에게, 더 나아가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어 ‘불교팝아트’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였다. 김영수 불교팝아티스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영수 작가는 나와 너, ‘우리’에 관심이 많다. 자신을 찾는 일에 인색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연기(緣起)를 탐구한다.

이러한 연유로 무엇을 하든지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지체하지도 않는다. 작품을 준비할 때도 전시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불교팝아트를 잠시 내려놓고 ‘소셜 아트(Social Art)’와 3월 7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불교박람회’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어느 날 즉흥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위를, 사회를,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레 이뤄진 일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니 외부를 차단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것으로만 수행을 정의해선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런 정의는 수행을 틀 안에 가두는 꼴이다. 김영수 작가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자신을 지키며 사회 일원으로 존재하는 예술가다.

▲ 지난 1월 30일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다향정에서 김영수 불교팝아티스트를 만났다. 그에게 ‘불자의 삶으로 언제 접어들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가 자기는 친(親) 불교성향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형상을 믿는 것은 아니고 그 가르침을 신뢰하고 따를 뿐입니다. 위파사나 등 명상을 통해 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하하.”

천연덕스러운 작가의 답과 웃음에 듣는 이는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곧 작가의 화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극히 불교적인 대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백논리’ ‘도 아니면 모’와 같은 이분법 사고를 하지 않고 앞서 언급했듯 연기(緣起)와 유기(有機)적인 생활을 몸소 행하고 있었다.

그런 김 작가가 ‘윤회금지’라는 파격적인 작품을 구상해낸 게 신기할 따름이다.

달마선사,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다

김영수 작가와 불교미술이 인연을 맺은 것은 14년 전, 1999년이다.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동종의 조각을 맡았던 윤수천 작가 밑에서 5년간 소조를 배웠다. 그러면서 2007년 3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소조 작가였다. 하지만 “실천불교와 불교미술의 관계를 고민하고 표현하려 했다”는 작가는 소조불상만 고집하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불교는 여전히 수백 년 전 모습으로 머물러있어 부처의 뜻이 묵혀있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불교미술을 모색했다. 팝아트에 관심이 있던 그는 곧 ‘불교팝아트’의 문을 열었다. ‘노 삼사라(NO SAMSARA)’를 비롯해 ‘춤추는 달마’ 등 심오한 뜻을 해학으로 나타내 불교를 더 친숙하게 나타냈다. 이러한 내공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었다.

그는 작가가 되기 전, 동산불교대학의 청년회에서 생활했고 수행자로서 3년간 위파사나 수행을 해왔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부처의 가르침은 하나인데 굳이 나눌 필요가 있느냐며 허허 웃음을 짓는 김 작가다.

파격적인 불교미술인지라 불교계에서 큰 반박이 있을 거라 예상한 작가는 큰 숨을 들이마시고 반박에 대한 답을 준비해놨지만 의외로 반응이 없어 조금은 재미없었단다. 다시 말해 그만큼 그의 불교미술 성향과 의도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 아니겠는가.

▲ 김영수 작가는 ‘춤추는 달마’ 등 불교의 심오한 뜻을 해학으로 나타내 불교를 더 친숙하게 나타냈다.


앞서 말했듯 김영수 작가는 현재 불교팝아트 장르를 잠시 내려놓았다. 대신 소셜 아트에 집중하고 있다. 소셜 아트를 굳이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불교팝아트의 문을 처음 연 그이기에 다른 길을 걷는다는 말이 내심 아쉬웠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나를 닦고 가정을 다스리면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듯 불교도 마찬가지예요. 보살도와 보살행을 보면 결국 불교도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미술이 지닌 의미를 넓혔습니다. 미술은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 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 역시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다. 작가는 ‘중생 구제’라는 거창한 목표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며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서울시 영등포)’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김 작가는 ‘명상맨’이라는 별칭을 쓰며 달시장과 같은 마을시장을 만들며 청소년, 청년과 소통하고 더 나은 삶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한다. 그러고 보면 김영수 작가는 ‘다리역할을 하는 미술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수천 년 전 부처의 가르침을 현대예술인 팝아트로 21세기 대중에게 알려주고 있고 생활에서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어느 인터뷰에서 불교 수행과 대안화폐로 운영하는 별시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가부좌 틀고 생각에 잠기는 것은 수행하기 위한 연습이에요. 삶이 실전이고요. 삶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부좌 틀고 연습을 하는 거죠. 명상에서 비워라 비워라 그러는데 지역화폐에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자본주의 같은 경우 쌓고 모으고 그래야 하잖아요. 얘(지역화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계속 써주고 그래야 하니까.”

그야말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자의 말아니겠는가.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길을 걸었다. 문득 그는 “지금 내가 0이었으면 좋겠어요. 생각도 형체도…”라며 무아(無我)를 바랐다. 아마 무아의 화두는 진정한 불자라면 누구나 소원하는 궁극 목적이 아닐까. 오늘도 그는 명상하며 자신과 사물의 본성을 찾고 그 깨달음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수행자 김영수 작가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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