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가까워오는 가운데,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취임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중앙행정과 지방행정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다가 3선 국회의원으로서 중량감과 능력도 겸비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다. 안행부 장관의 소관이 지방자치, 경찰, 소방 등 국가의 중추 기능이 많고, 공직자에 대한 일반관리 기능도 있는 등 종합적이어서 취임하자마자 재난 발생지역 등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민생을 살피는 일에서부터 임무를 시작했다.

탁상행정보다는 실제적으로 민생과 관련된 현장 업무를 좋아하는 게 유 장관의 스타일인지라 스스로 제살 깎는 일부터 실행에 옮겼다. 다름 아닌 장·차관실에 배치된 7명의 경찰을 4명으로 줄이고, 장관 보좌를 위해 파견된 치안정책관의 직급을 경무관에서 총경으로 한 계급 낮추는 등 본보기였다. 그러면서 기획, 지원 분야보다는 현장과 민생 위주로 인력구조 개선을 주문했는데, 복지 전담 공무원의 확충 계획도 현장을 중시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과거 정부에서 안행부의 전신인 내무부,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개 실세인 거물급이 임명됐다. 전두환 정권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을 지냈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최형우 장관 등 최고 권력자와 줄이 맞닿은 실세 장관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정부 고유 기능에 관한 발전적 전략보다는 정권의 유지와 관련된 국민의 위무(慰撫)정책 등에 급급한 나머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본연의 충실한 밑그림 그리기에는 등한시 한 면이 많았다.

지방자치 실시 후 1995년 민선 단체장을 직선하는 지방선거를 하면서도 사전에 각종 제도적 개선을 완전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급히 실시한 관계로 지방자치는 절름발이 신세가 됐다. 사전에 정비돼야 할 행정구역의 개편이나 지방재정의 확충을 위한 국세와 지방세 간의 조정, 광역시의 구 의회 문제 등에서 허점이 많아 지방자치는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문제점이나 현재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유 장관은 안행부가 해결해야 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주춧돌 놓기에 마땅한 적임자라 할 수 있다. 행정구역을 살펴봐도 문제가 많은데,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의 근간은 조선시대에 정해진 구역을 기반으로 하여 일제 때 만들어놓은 시군 형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경시대에 적합한 틀이 정보화와 고도 산업화 시대에 들어왔어도 변하지 않고 있으니 맞지 않고, 더군다나 중앙-시도-시군구-읍면동으로 이루어지는 지방행정체계 4계층은 불필요한 계층이 있는 비능률적인 계층 구조를 이룬다.

문제는 비단 지방행정체계뿐만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나왔고, 국가관리적 또는 주민편의적 입장에서 필요성이 충분히 제기된 특별행정기관의 시도 이관 문제에 대해서도 등한시하였다. 지방병무청, 지방원호청 등 특별행정기관 가운데 지방행정기관에서 관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성 있는 업무 기능을 통폐합하여 지방정부로 이관하여 근본적으로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새 정부의 인수위나 출범 초기에 일언반구도 없었다.

안행부 장관은 국가 조직에서 행정부의 국무위원이자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행정에 대응하여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하여 지자체 지원 기능도 갖고 있다. 국가사무가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지방자치제도를 정비하고 지자체 지원 등 지방을 대변하는 기능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안행부의 전신인 행안부나 내무부의 수장들은 문제점이 상존한 지방의 발전과 이익 대변보다는 중앙정부를 위해 더 힘을 썼던 것도 더러 난 사실이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무늬만 지방자치이지, 자치법규나 재정권 등 제도적으로 보장된 자치권의 권한이 약한 게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법률로 위임되거나 구체적인 규정이 없으면 조례조차 제정하지 못하는 실정이고, 국세 대 지방세의 비율은 8대 2로 구성돼 자주재정권이 빈약한 상태에서는 국가 또는 중앙행정기관에 목을 매달게 마련이다. 게다가 기초단체의 장과 의원 공천권마저 정당에 달려 있으니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되는 등의 폐단도 많다.

행정구역 개편, 특별지방행정기관의 통·폐합, 지방자치 입법권의 강화, 지방재정의 확충 등 지방자치의 현안들이 산적되어 있음에도 아예 입을 다물거나 변죽만 울려왔다. 그런 처지니 지방자치 제도나 운영의 속을 들어다보면 문제점들이 꽉 차 있건만, 지방업무를 지원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은 지방정부가 징징거리면 마치 우는 아이 달래듯 교부금 몇 푼 더 쥐어주고서 유야무야(有耶無耶)해온 것이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중앙 위주의 행정으로 홀대받은 지방자치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닐진대, 그 사정을 아는 안행부 장관이 말끔히 해결해야 한다.

유 장관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단체의 장과 의원에 대해 정당공천권 배제, 행정구역 개편 문제 등에 대해 힘쓸 것이라 천명했다. 현재의 지방자치로서는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는 유 장관은 지난정부 시절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진정한 지방정부의 대변자로, 지방자치의 개혁 전도사로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 절름발이 지방자치를 개선해야 했건만 덮어두고 끝내버린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지방자치의 터를 새로 다지는 일은 박근혜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명분이고 급선무다. 이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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