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주인이 식품을 정돈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문구용품 안 팔려
‘과자’ 팔며 가게운영
하루 수입 3~4만 원
식품판매 금지될 듯
문구점 타격 불가피
상인들 생존권 호소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롯데, 크라운 등에서 나온 과자도 ‘불량식품’입니까? 이런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요즘엔 문어발 하나도 낱개로 포장해서 나와요.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옛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과자만 생각해 정책을 만들면 안 되죠.”

지난 27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태희문구 안. 1년 중 가장 장사가 잘 돼야 하는 신학기이지만 이 문구점 주인인 이성수 씨만이 빈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한 자리에서 23년째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씨가 이날 초등학교 등교시간에 거둔 수익은 만 오천 원.

시간이 30분가량 지난 뒤 손님 한 명이 가게에 들어왔으나 구입한 것은 300원짜리 볼펜 한 개뿐이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토, 일요일 쉬지 않고 일하는 이 씨지만 하루 버는 돈은 3~4만 원이다. 여기서 물건 값 등을 빼면 이익은 더 적다. 이마저도 문구점 한쪽에 진열해
놓은 과자 등 식품에서 생기는 수익이다. 올해는 식품마저 못 팔게 한다는 소리가 들려 하루하루 불안하다는 게 이 씨의 말이다.

이 씨는 “몇 년 전 구청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일부를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과자를 놓을 수 있는 선반과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가림막도 설치했다”면서 “그리고 허가된 과자만 팔지 문방구 주인들도 요즘엔 위생적이지 않은 식품은 팔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가 와서 불량식품을 파는지 안 파는지 확인해본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만약 불량식품을 없애려면 제조사를 적발해야지 영세 상인들을 풀칠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학교 앞 문구점 이제는 추억 속으로
학교 앞 영세 문방구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이 씨와 같이 식품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전국 2만 6986개에 달하던 문구 소매점은 2011년에 1만 5700여 개로 줄었다.

이렇게 된 데는 학생 수 감소와 대형 프랜차이즈 사무용품점 등장 등의 영향도 있지만 학교에서 준비물을 일괄 구매하는 이른바 ‘준비물 없는 학교’ 사업의 영향이 크다. 이 사업은 준비물 구입에 따른 맞벌이와 조손가정 등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수업 중 필요한 준비물 없는 학생이 없도록 해 학습효율 극대화를 도모하고자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학부모와 학교 등에선 좋은 반응이 더 많지만 수십 년째 학습 준비물 등을 팔아온 문방구에는 타격이 크다. 서울의 경우 2011년부터 시내 모든 공립초등학교 등에 학습준비물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업무 추진계획에 ‘학교 주변 문방구점에서 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이 포함돼 문방구를 운영하는 영세 상인의 시름은 더 커졌다.

◆영세문구업계 상인들 거리로 나서
이렇게 되자 문구 업계도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다. 학습준비물생산유통인협회와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은 26일부터 이틀에 걸쳐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정부에 대안을 요구했다.

이들은 ▲유통재벌 및 대형마트의 문구 판매 및 신규 진출 규제 ▲문구 생산 및 유통을 중소기업 적합 품목으로 지정할 것 ▲‘준비물 없는 학교’ 제도에 따른 문제점 개선 ▲식약처의 학교 인근 문방구점의 무조건 식품판매 금지 철회 등을 호소했다.

이성원 학습준비물생산유통인협회 사무국장은 “그나마 아이들 기호식품 먹거리로 근근이 버텨왔다. 불량식품은 단절돼야 하지만 문구점에서 무조건 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골목상권을 죽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마트뿐 아니라 최근엔 오피스디포 등 다국적기업까지 문구류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정부가 상생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의회도 이러한 문구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상생하는 방안을 찾고자 문구 업계,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지난 1월부터 운영, 미팅을 갖고 있다. 한 관계자는 “‘준비물 없는 학교’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문구업계에 타격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다. 너무 상반된 입장이어서 계속 미팅을 갖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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