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가 있으니 바로 정읍사(井邑詞)이다. 그 내용은 정읍현(井邑縣)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시장에 가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므로 혹시 밤길에 해(害)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노래는 부인이 남편을 위하는 노래지만 옛 가사(歌詞)문학을 들춰보면 부모가 자식을, 임금이 백성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아끼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게 다반사이다. 상대방을 위하는 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상대방을 위하여 배려하고 걱정해줌은 미덕이어서 좋다. 특히 사회나 국가의 현재와 장래를 책임지고 있는 치자(治者)들이 피치자(被治者)의 안위를 살피고 일상생활을 챙긴다는 것은 책임감이기에 앞서 감사함마저 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은 위정자들이 국가의 발전을 위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일해 왔다고는 하지만 거창한 출발에 비해 초라함으로 끝을 맺게 된 용두사미(龍頭蛇尾)의 결과가 허다했으니까 말이다. 그때마다 국민은 허탈해했던 것이다.

국가 입장이든 국민의 입장이든 간에 가장 핵심적인 국정의 키워드는 ‘안보’와 ‘경제’와 ‘복지’ 문제라 할 것이다. 안보와 경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의 상호 협력 문제가 내재되어 있어 국내에서 열심히 한다고 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국제협력이 긴요함이 말할 나위도 없는데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가일층 높아진 현재 안보상황을 보면 주변국과의 공조가 더한층 필요하다. 경제 회복을 위한 국가 간 노력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난 후에 여야의 뒤늦은 정부조직법 처리에다가, 정부 부처의 장·차관 임명이 지연되어 이제야 대통령이 정부 부처의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국민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게 복지 분야다. 국민복지는 대선 때부터 후보자들의 공약사항으로 많이 나왔고, 박 대통령 자신도 국민과 약속한 복지정책이야말로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여는 바로미터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중점 사업은 생산적·맞춤형 복지, 사회안전망 구축 등 복지정책 3대 방향 에 맞춰졌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복지정책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첫째는 스스로 도저히 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운 분들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고 기초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일할 능력이 있는 분들은 일을 통해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복지가 시대정신’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 내용이라 하겠다.

복지 문제의 해결은 국가 재정과 연관되기 때문에 대상, 범위 등에서 우선순위가 가려져야 한다. 복지는 대상자 결정에 따라 그 방법이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로 구분되는바, 기준은 재산과 소득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형태는 대부분 선별적 복지인데, 전국 391만 명의 기초생활 수급자(재산과 소득이 없어 생활 능력이 없는 자)가 대표적 예다. 의료보험도 마찬가지로 지역보험은 재산을 기준으로, 직장은 소득을 기준으로 하여 비율에 따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보편적 복지는 소득과 재산에 무관하게 해당 대상자 전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새 정부 들어 0~5세 아이들에게 보육·양육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그 예다. 부모의 재산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연령에 해당되면 대상자 누구에게나 혜택을 주는 제도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그 내용으로 보아 이론적으로는 보편적 복지에 해당된다.

보편적 복지의 적정 대상은 위 사례와 같이 두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전국의 0~5세 아동 319만여 명에게 지급하는 보육·양육수당이나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원하는 기초노령연금이 그것이다. 특히 노인빈곤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고,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에 크게 기여한 노인들의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현실에서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국가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에서 결정한 내용을 보면 기초노령연금은 올해에는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자에게 월 최대 10만 원을 지급하고, 2014년 7월부터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대상자만 혜택 받는 올해의 방법은 선별적 복지이고, 내년 하반기 계획은 비교적 보편적 복지의 수준에 가깝다. 국가재정을 감안한 것이지만 지급 금액은 노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해소한다는 당초 목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시혜를 보장하는 국민복지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존재 자체가 국민 행복을 위한 것인바, 앞으로 국민복지의 확충이 관건이다. 때문에 시혜 대상자에 따른 선별적 복지, 보편적 복지에 대해 명백히 해둘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국민복지에 관해 특별 주문이 많다. 따지고 보면, 행상을 떠난 남편을 염려하고 기다리는 정읍사의 내용처럼 타인에 대해 걱정과 배려를 하며, 국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나라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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