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돈 벌어 나른다. “이것 밖에 못 벌어 오냐?”는 구박을 들으면서도, 다 자식 위한 일이라며 묵묵히 그 수고를 감내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가정에서 아버지가 소외된다. 대화에서 소외되고 노는 것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아이들도 많다.

남편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일찌감치 접은 아내는 자식에게 희망을 걸고 인생을 건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편의 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 심지어 성인이 된 자식을 끼고 돌며 엄마의 존재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태도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반영된다. 아내가 남편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대하면 아이들도 아버지를 무시하고 얕본다. 아내가 남편 보기를 돌 같이 하고, 돈이나 벌어 오는 머슴 정도로 대하면, 아이들 역시 그 아버지를 그렇게 대한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아이들 역시 아버지를 그리 대한다.

많은 가정에서 남편들이 예전처럼 아내로부터 대우 받지 못한다. 아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아무리 훌륭하고 명예로운 일을 하더라도 돈을 많이 갖다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훌륭한 남편인데도 단지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내가 “무능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아이는 아버지를 못났다고 생각한다. 평생 남편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아버지가 수고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걸 알지 못한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장관을 뽑을 때마다 청문회가 열린다. 그 때마다 위장전입이나 부정한 돈을 받아 챙긴 이력들이 들춰져 보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한다. 본인이야 남들 다 하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하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보는 사람들 마음은 그렇지 않다. 이왕이면 흠결이 덜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나라 일을 맡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이다.

만인 앞에서 민망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지만 그 아내들 역시 책임이 크다. 자식 교육이나 아파트 투자 등의 이유로 위장전입을 하거나 받지 말아야 할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급만으로는 ‘사모님’ 행세를 할 수가 없다고 옆구리를 찔러대면, 제 아무리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은 남자들이 명예롭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자존심 꼿꼿하게 세우고 청렴결백하게 살고자 해도 집안에서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얼마 전 퇴임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동이었다. ‘청백리’였던 그는 새 정부 초대 총리로 거론됐지만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 공직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했고, 퇴임 후 변호사 사무실도 열지 않겠다고 했다. 아내의 채소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겠다고도 했다.

그의 아내가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이 TV 뉴스로 방송된 적이 있다. 대단한 ‘사모님’임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채소가게를 손수 운영하면서도 구김살 없이 활짝 웃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 한 남자가 명예를 지키며 아름답게 삶을 꾸려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명예롭게 산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명예를 얻는 것도 힘들지만 지키는 것도 힘들다. 명예를 지키라고 말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아무튼 힘든 세상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