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나라 2세 황제 호해의 학정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시킨 그즈음, 조고는 황제에게 일러 모든 정사를 조정에 나가지 않고 궁중 안에 은둔하여 결재하도록 한다. 대신들도 황제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승상 이사가 찾아와 조고에게 황제 알현을 요구했으나 교묘하게 따돌린다.

“관동에는 난적들이 아직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노역에 동원하여 아방궁의 역사를 진척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나 말 같은 동물들을 모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로서도 간하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만 저는 비천한 출신이어서 송구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아무래도 승상께서 해주십시오.” 승상 이사가 답했다. “나도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요즘 폐하께서는 조정에 나오시지도 않고 늘 궁중에만 계시니 어찌하겠소.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도 기회가 없잖소.”

조고가 얼른 말을 받았다. “제가 폐하께 말씀드려 알현 날을 승상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조고는 그렇게 말한 다음 황제가 술자리를 벌려 놓고 궁녀들과 어울려 즐기고 있을 때 승상에게 알렸다. “지금이 폐하께 상주하실 때입니다.”

이사는 곧장 달려가 황제 만나기를 청했다. 한 번 두 번 그런 일이 계속 되풀이 되자 황제 호해는 몹시 화를 내며 꾸짖었다.

“승상은 짐이 재미 좀 보려고 하면 찾아와서 잔소리만 늘어놓지 않는가. 짐을 병신으로 아는가?” 조고가 옆에 있다가 아뢰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징조입니다. 지난날 사구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는 승상도 가담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황제가 되셨지만 승상의 지위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불평이 아닐까요? 폐하께 성가시게 구는 것도 영토를 받아 왕이 되려는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니라 승상의 큰아들 이유 말입니다. 이유는 현제 삼천 군수로 있습니다만 초나라 진승이 반란군을 이끌고 삼천군을 지날 때 성 안에 처박혀 출전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진승의 고향이 바로 승상의 고향과 이웃한 곳이라서 봐주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만, 아직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기에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지금 조정에서는 승상의 권세가 폐하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그 말을 듣고 호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이사의 죄상을 낱낱이 조사 시켰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가 좀체 어려웠다. 그러자 삼천 군수 이유가 반란군과 내통한 사실을 조사하게 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이사는 즉시 황제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마침 호해가 감천궁에서 씨름과 연극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잠잠하던 반란군의 세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관중의 주력부대까지도 관동으로 계속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 우승상 풍거진, 좌승상 이사, 장군 풍겁 등이 나서서 호해 황제에게 건의했다.

“관동에서는 도적 떼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정에서도 토벌군을 보내어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습니다만 아직 회복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도적 떼가 들끓는 것은 백성이 변경 수비, 물자수송, 노역 등의 일에 견디어 내지 못하는데다가 세금 또한 무겁기 때문입니다. 제발 당분간이라도 아방궁의 건축 공사를 중지하시고 병역과 노역을 경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황제의 대답이었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소. 요임금과 순임금은 초가집에 살면서 질그릇으로 식사를 했다. 문지기가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몹시 검소한 생활을 했다. 또한 우임금은 용문산을 뚫어 대하의 수로를 만들고 황하에서 범람하는 물을 바다로 뽑아내는 공사를 하면서 임금 자신이 손수 흙을 만지고 절굿공이와 괭이를 잡고 무릎이 벗어지도록 일을 했다. 노예보다도 더한 노동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천하를 손에 넣을 때의 목적은 무엇인가? 천하를 손에 넣으면 하고 싶은 일이 모두 마음대로 되고 어떤 욕망이라도 자신의 마음대로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천자로서 스스로 노동해야 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법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기만 하면 백성들과 세상을 다스릴 수가 있다. 그럼에도 순임금이나 우임금은 천자라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택하여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을 본받을 필요는 없다. 짐은 천자 자리에 앉기는 하였으되 아직 그 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소. 그러기에 천자다운 풍모를 갖추기 위하여 일천 승의 마차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격식을 정비하고 있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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