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똑같은 환경에 여러 명의 아이를 데려다 놓으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는 아이, 가만히 앉아있는 아이, 호기심에 두리번거리는 아이, 옆의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 그저 즐거운 아이 등. 흔히 아이의 이런 반응을 보고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성격이란 무엇일까? 단순화시켜 말하면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반응하는 생각, 행동, 정서 등의 유형을 말한다. 한편 기질(氣質, temperament)이란 아이의 타고난 성격을 말한다. 더 엄밀히 정의하면 기질이란 각 개인의 감정 측면의 개성을 말하고, 이와 같은 기질을 기반으로 한 감정과 의지 전체의 표현을 성격이라고 말한다. 명랑함, 쉽게 화를 냄, 느긋함은 기질이고, 고통에 대해서 견디는 것이 강한지 약한지, 책임감이 있는지 아닌지 등은 성격이다. 기질은 타고나는 특성으로 환경의 영향을 거의 안 받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면 타고난 기질도 환경의 영향에 의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질도 이와 같을진대 성격 역시 타고난 유전적 부분 외에 양육 환경이나 후천적 경험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요약하면 타고난 성격인 기질을 바탕으로 아이가 후천적으로 어떠한 경험을 하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동구권의 내전과 학살로 인해서 수많은 고아가 생겼다. 그들은 부모의 보살핌이 결여된 채 보육원에서 여러 양육자의 손을 거쳐서 양육됐고, 그들 중 상당수가 난폭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보였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자폐증과 유사한 증상까지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많은 아동들이 영국 등의 이웃 나라로 입양됐고 새로운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정신적, 물질적 풍요 속에 자라났다. 그렇게 6개월, 1년 점차 시간이 지난 후에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그들의 성격은 활발해지고 양순해졌다.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경험’에 의해서 아이의 ‘유전적 기질’이 바뀔 수 있다.

소아정신과에서는 만 3세 이전의 아이에게 ‘성격’ 대신 ‘기질’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성격은 그 사람의 감정, 의지, 행동의 경향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인데, 만 3세 이전의 아이들은 주변의 자극에 일관되게 반응할 만한 사고, 감정, 행동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 3세 이전의 아이들은 기질에 따라 ‘까다롭다’ ‘순하다’ ‘보통이다’의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만 3세 이후가 돼야 ‘활발하다’ ‘소극적이다’ ‘공격적이다’ ‘내성적이다’ 등의 성격적 특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엄마, 아빠, 또래 친구, 주위 어른들과 접촉하면서 생긴 뇌 속의 기억을 토대로 특정한 행동과 감정 유형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 속의 회로’는 비슷한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특정한 행동과 감정 반응을 나타낸다. 따라서 아이의 성격을 원만하고 밝게 만들어주려면 태교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긍정적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부모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 성격은 두 가지 차원에서 부모를 닮는다. 하나는 타고난 성격, 즉 부모의 성격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닮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선천적 기질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태내 환경 역시 이미 놓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부모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을 바꿔 놓을 수 있다. 좋은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까다롭거나, 괴팍하거나,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또는 소극적인 아이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좋은 환경이란 한결같은 애정을 보이면서도 옳고 그름을 일관되게 가르치는 부모의 태도다. 이제부터라도 아이의 성격을 원만하게 바꾸기를 원한다면, 부모가 먼저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서 아이가 본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부모가 바뀌면 아이의 성격도 바뀔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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