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8년 과천 서울랜드와 명동YWCA, 이화여고 류관순기념관 등에서 열린 ‘2008 서울학생 동아리한마당’ 행사 모습. (사진 출처: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 페이스북) ⓒ천지일보(뉴스천지)

공청회 없이 지역축제로 변경돼… 의욕·사기 꺾어

[천지일보=김예슬·장수경 기자] “한두 해 해온 행사도 아닌데 참여 주최자(학생, 교사)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이 폐지돼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어요. 학생과 교사가 주축이 돼 십수 년째 일궈온 축제인데 말이죠.”

지난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의 풍물놀이마당 운영위원장 고인석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19회째 이어진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이 공청회 한 번 없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고 씨는 뒤늦게 공문을 통해 행사 폐지 이유가 전시성과 이벤트성에 그쳤다는 평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 씨는 “학교현장에서 그나마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적 행사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면서 “학교폭력, 왕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정책이 만연한 현실에서 오랫동안 교사와 아이들의 꿈, 결속에 중요한 디딤돌이 된 행사를 ‘이벤트성’으로 몰고 가면 그동안 참여했던 사람들은 다 뭐가 되느냐”라고 하소연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해온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은 학생의 재능과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건전한 축제 문화의 기틀을 마련·확산하기 위한 취지로 지난 1998년부터 서울 초·중·고등학교 학생 및 동아리를 대상으로 진행돼왔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돼 오면서 현재는 지역 연계 학생 주최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변경됐다. 이에 학생 동아리의 교내 발표 활성화, 학생 동아리의 교외 발표 활성화, 학교축제 활성화, 지역사회와 연계한 학교축제 활성화 등 4가지 유형으로 공모를 받아 시범 운영 중에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문예 관련 사업 중 일부는 폐지되고 일부는 단일화되거나 변경됐다”면서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 사업의 경우) 수많은 회의를 거쳐 지역 연계 학생 주최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변경했다”라고 말했다.

◆폐지 결정에 학생·학부모·교사 빠져

문제는 행사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내용에 모순이 많고, 교육청 실무자 몇 명에 의해 폐지 및 변경이 결정됐다는 것.

이에 많은 이들이 교육청의 일방적인 태도와 관료주의적 행태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부모는 “이제 학교가 아이들 동아리 활동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원해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이 있던 축제인데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없어졌다”면서 “어른들 사이에서는 ‘곽노현 색깔 지우기’라는 등 없어진 이유에 대해 여러설이 난무하다. 소통하지 않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본지가 접한 교사들도 대부분이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곽 전 교육감에 대한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과 문예체지원단 파견교사 장익서 씨는 “‘곽 교육감 색깔 지우기’라는 것은 맞지 않다. 다만 (곽 전 교육감 구속) 시기가 맞아 떨어졌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 씨는 “사업이 변경돼야 하는 문제점으로 거론된 항목과 변경 과정은 편파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TF팀이 운영됐으나 폐지를 전제해 두고 후속조치라도 해야 한다는 뜻에서 부랴부랴 마련된 것이었다. 폐지를 결정하기 전에 공청회가 전제됐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일부 학교만 참여하는 교육청 주도 행사’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학교 동아리가 다 무대에 오를 수는 없으나 예선, 체험학습을 통해 많은 학교의 동아리 및 학생이 참여할 수 있게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지적이 나온 것은 지자체에서 비디오 심사 등으로 예선을 대체하거나 각 학교장이 평일을 체험학습일로 정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나온 말 같다”고 전했다.

‘참가자와 참관자로 분리되는 발표회 형식’이라는 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장 씨의 설명이다. 그는 “동아리 한마당은 크게 경연마당과 체험마당으로 이뤄진다. 경연마당만 있다면 발표회 형식이 될 수 있으나 교과, 과학, 환경, 봉사 등 다양한 체험부스를 운영하도록 했다”면서 “여러 학교 학생들과 교류를 통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교육 감상 수여 경연 방식으로 인한 스펙 쌓기 행사’였다는 점에 대해서도 불쾌해했다.

장 씨는 “성적표에 외부 상은 게재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교육감상을 받는다고 해도 특별한 혜택이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왜 없어진 건지 모르겠어요”

학생들도 행사가 폐지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지난해 기획단 임원이었던 이승희(20,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씨는 “우리가 직접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다는 게 한마당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 선후배 간 교우관계도 좋아지고 사람 대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한마디 얘기 없이 폐지돼 화가 났다. 이는 학생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황진영(20, 여) 씨에게도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은 특별하다. 학교 내 과학 동아리가 만들어진 이래 처음 나간 행사이자 동아리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

황 씨는 “과학을 주제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실험콘티를 열심히 짰던 기억이 난다”면서 “친구를 통해 행사가 없어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우리 과학부 후배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인 김희준(월계고등학교 3학년, 남) 군은 ‘비보이’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춤추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는 시선이 줄어든 것을 느꼈다. 또 교육청 주관 행사였고 학교이름을 대면 ‘비보이’가 유명하다고 인식돼 성취감도 들었다”면서 “2011년에 행사가 끝나고 설문을 하길래 2012년에도 하는지 알고 준비했는데 없어졌다고 해서 아쉬웠다. 결국 준비한 것은 타 학교 행사나 교육청 초청공연 행사에서 보여줬다”고 말했다.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에 참여했던 학생 중에는 현재 문화, 예술쪽 계통에 있는 사람도 많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기과 졸업 후 공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식(26) 씨는 “제일 처음 연기를 한 것이 14살 때 서울학생동아리 한마당에서였다. 수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인 경험이었기에 첫 무대가 너무 즐겁고 좋아서 지금까지도 연극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서울학생동아리가 없어져 아쉽다. 부활했으면 좋겠다. 스케일이 커지면 경험하는 바도 다르고 여러 동아리들이 하는 것을 보고 성장하고 지혜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관계자들은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이 지역축제 모델로 가는 게 무조건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의 경우 서울시내 1200여 개의 학교가 모두 참여하기에 시간·공간적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지역축제 모델로 운영하면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하고, 지자체 인프라도 활용할 수 있어 축제 활성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어 관계자들은 지역축제 모델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전체를 총괄하는 축제가 필요하며, 여기에 서울학생동아리가 제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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