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음반

김동호(1934~  )

태초에 말씀이 있지 않았다
노래가 있었다
물결 같은 노래가 별빛
달빛 햇빛과 함께 있었다

그 노래를
오선(五腺)의 배꼽이 받아 적었다.

[시평]
‘옴파로스’, 라틴어로 배꼽을 말한다. 아폴로 신전에 있는 지구 중심의 돌의 이름이기도 하다. 배꼽은 인체의 중심이며 동시에 우주와 사람을 이어주는 그 중심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은 우주와 이어진 탯줄을 이 배꼽에 달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우주로부터 노래를 품부받고 태어난 사람인지 모른다. ‘시’라는 노래. 그러므로 시인에게는 ‘태초의 말씀’이 아니라, ‘물결 같은 노래가 별빛 달빛 햇빛과 함께 있는’, 그런 태초를 지녔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노래를 오선(五腺)의 배꼽, 곧 우주의 오감을 받아들이는 배꼽을 통해 받아 적고 또 노래를 한다. 배꼽의 음반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여! 그 이름 시인이여!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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