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와잡설(松窩雜說)’에 기록된 사건으로, 동상을 입고 쓰러진 남편을 보고 슬픔에 잠긴 부인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고서에 기록된 조선시대 한파
송와잡설·태종실록·인조실록 등
나라에서 군사들 옷 지급하기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예나 지금이나 추위는 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하다. 전력이 들어오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겨울철 추운 날들을 어떻게 보냈을까.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기(李芑, 1476~1552)가 지은 ‘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당시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책에는 “통천군 읍내에 가난한 백성이 있었다. 겨울에도 입은 것이라고는 다만 묵은 솜과 해진 굵은 베옷뿐이었다. 소를 몰고 추지령(楸池嶺) 밑에 나무하러 갔는데, 마침 그날은 풍설(風雪)이 너무도 차가웠다. 날이 저물자, 몰고 갔던 소가 빈 길마로 홀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깜짝 놀라서 몹쓸 짐승에게 해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가 찾았다. 중대(中臺) 길에 이르니, 그의 남편은 동상(凍傷)을 입고, 눈 위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내는 곧 옷을 벗고 가슴을 맞대어 안고 누웠다. 혹시 다시 깨어나기를 바란 것이나 아내도 또한 옷이 얇아, 머리를 나란히 하고 죽었다”는 내용이 기록됐다.

겨울철 불청객인 동상으로 명을 달리했다는 내용이다. ‘동상’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태종실록’ 태종 2년 임오, 1월 12일의 기록에는 “이지(李至)․김이음(金爾音) 등이 대궐에 나와서 아뢰기를 ‘때가 몹시 춥사온데, 태상왕께서 소요산에 계신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모시는 사람들은 한데서 자고, 나무와 돌을 다듬는 사람은 모두 동상에 걸려서 살가죽이 얼어 터졌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 ‘인조실록’ 인조 3년 을축, 11월 11일 자에는 “요즈음 날씨가 혹독하게 추우니 각처에 있는 수비 군사들이 반드시 동사(凍死)할 염려가 있다. 해조로 하여금 각기 공석(空石)을 지급하게 하고 너무 얇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의(襦衣)를 지급해 동상을 면하게 하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도 동상은 겨울철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청장관전서 제15권’에서 “나는 열 손가락이 다 동상이 들어 마치 밤톨만 하게 불룩 부어올라서 거의 피가 터질 지경이니 매우 두렵구려”라고 자신을 묘사했다.

1620년(광해군 12) 이창정(李昌庭)이 편찬한 의서(醫書)인 ‘수양총서’에는 “발이 동상(凍傷)을 입었을 때는 더운물로 씻어서는 안 된다. 더운물에 씻으면 발가락이 빠진다”라고 동상에 걸렸을 때의 조치가 기록돼 있다.

이로써 지금도 동상의 피해 사례가 많지만 조선시대 겨울철 한파로 인한 피해는 더욱 컸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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