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코스타리카의 흡혈박쥐는 낮에는 고목에 매달려 있다가 밤이 되면 짐승의 살갗에 구멍을 내고 조용히 피를 빨아먹는다. 하지만 피를 빨 마땅한 짐승을 찾기가 쉽지 않고 설사 운이 좋아 찾았다 하더라도 순순히 피를 빨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때문에 흡혈박쥐는 자주 피 맛을 보지 못한다. 베테랑 박쥐는 열흘에 한 번 정도 굶지만 어린 것들은 사흘 걸러 하루 씩 배를 곯는다.

박쥐는 60시간 동안 먹지 못하면 죽는다. 그런데도 굶어 죽는 박쥐가 많지 않다. 신기하게도 피를 듬뿍 빨아들인 박쥐는 하루에 필요한 양을 뺀 나머지를 토해 내 다른 박쥐에게 먹여준다. 인간들만 나눠먹을 줄 아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새도 쥐도 아니라고 비웃는 박쥐가 저희들끼리 나눠먹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그곳의 모든 흡혈박쥐들이 공평하게 나눠먹는 것일까. 어느 놈은 죽어라 고생해서 다른 박쥐에게 피를 공급하는데, 어느 놈은 가만히 앉아 받아먹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도 그러한데 박쥐라고 다를까.

그런데 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과거에 피를 제공한 박쥐는 그 상대 박쥐로부터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이웃의 박쥐에게 남은 피 한 방울 주지 않은 놈은 그 역시 피 한 방울도 얻어먹지 못한다.

꾀가 많은 이 박쥐들은 나름의 규칙을 정해 놓고 있다. 만약 뱃속에 가득 피를 채우고 있으면서도 이웃에게 피를 나누어주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 박쥐들은 서로 털을 골라주며 유대감을 다지는데 털을 다듬으면서 배가 빵빵하게 피로 채워져 있는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도 있다는 원숭이는 또 어떤가. 아프리카 버빗 원숭이를 보자. 원숭이가 싸울 때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내면, 그 전에 그 원숭이로부터 도움을 받은 원숭이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도움을 요청하는 원숭이의 소리를 녹음한 것을 틀어주었더니, 역시 주저 없이 달려왔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하는 유행가가 있지만, 이놈들이 딱 그런 식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형제와 자매, 혹은 부모 자식 사이에는 달리 반응한다. 친족 원숭이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전에 자신을 도와주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달려간다. 혈연끼리는 본능적인 사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웃 원숭이와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를 한다.

‘이타적 유전자’의 저자 매트 리들리는, 네가 주면 나도 준다는 식의 이 같은 상호호혜주의 원칙은 관계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며 또한 경쟁적이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두 개체의 만남이 일회적이고 우연성이 높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마주친 녀석한테 뭘 줘 봤자 언제 그것을 되돌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동물들이 먹이를 나눠주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주는 만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국 이 동물들의 이타심은 결국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기심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이런 이기심이라면 아름다운 이기심이다.

일본의 화장품 회사 긴자마루칸의 회장이자 유명 저자인 사이토 히토리는 “먼저 자기 앞가림을 해야 남을 도울 방법이 떠오릅니다. 인간의 뇌는 자신을 먼저 지키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내 앞가림만 하지 말고, 받은 게 있으면 되갚을 줄도 알고, 박쥐처럼 원숭이처럼 그렇게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참 추운 겨울날,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