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화광동진(和光同塵)
[고전 속 정치이야기] 화광동진(和光同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노자>는 철학, 역사,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지혜와 영감을 준다. <주역>은 심오함과 신비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난해한 문장과 부호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에 비해 <도덕경>이라고도 부르는 <노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석과 해설을 통해 비교적 쉽고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극적이고 관조적인 사상으로 알려졌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보면 <노자>는 매우 고차원적인 전략과 전술의 수립에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에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노자 56장>에서는 그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진고응(陳鼓應)은 이 부분을 통치술로 풀이했다. 그에 따르면 통치술을 아는 사람은 백성들을 향해 강압적인 정치적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강압적 명령은 아무리 옳아도 반발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신 분열된 곳을 메워 이탈을 방지하며,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만들어 분쟁을 해소한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조화를 중시하여 세상사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에 ‘현동(玄同)’이라 한다.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고, 이해(利害)를 따지지 않으며, 귀천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존귀한 ‘천하인’이라 부른다. 왕필(王弼)은 ‘현동’을 다툼의 근원을 없애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통치자가 특별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니 다툴 일이 없고, 특별히 무시하는 것이 없으니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현대사회를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라고 한다. 지식과 정보의 질과 양, 소통시스템, 해석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사회는 고도의 ‘드러냄’을 중시한다. Mass communication보다 Personal communication의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의 전달자는 자신의 전략적 목적에 따라 가공된 것을 유통시킬 수 있다. 수용자도 그것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이해관계에 적용한다. 노자는 이처럼 개별적으로 가공된 지식과 오염된 정보가 끼치는 사회적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최고통치권자는 친소, 이해, 귀천이라는 분열과 대립을 좌예(挫銳), 해분(解紛), 화광(和光), 동진(同塵)이라는 방법으로 융합해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현동’이다. 진(秦)은 전국시대의 분열과 대립을 군사적으로 봉합했지만, 오랫동안 분권체제의 혜택을 누렸던 지배층의 반발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다. 한(漢)은 <노자>를 통치술로 재해석한 황로학(黃老學)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하여 민족적 통합을 이룩할 수 있었다.

건국이후 우리나라 통치체제의 변화를 크게 나누어보면, 갈등이 심화되어 크게 흔들리는 지금의 정치상황이 무슨 문제인지를 알 수가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급성장한 군부세력을 등에 업고 철권통치를 자행했다. 진의 통치이념과 유사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문민정부는 겉으로는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지연, 학연, 혈연, 인맥 등으로 국민들을 분할하여 갈등을 조장시킴으로써 다수의 국민보다 소수의 지지층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은 종교마저 분할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자신의 지지기반에서 소위 친박을 소외시켰다. 분열의 극치였다. 군사정권 이후의 지도자들이 좌예해분과 화광동진의 경지를 무시한 결과 우리 사회는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공존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노의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차재(車載)는 날카로움(銳), 분쟁(紛), 고고함(光), 세속적임(塵)이라는 대립적 개념을 좌(挫), 해(解), 화광(和), 동진(同)이라는 통일적인 개념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각자의 의견을 고집하고 남의 의견을 배척하기 때문에 시비(是非)와 분쟁(紛爭)이 생긴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대국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당연히 어둡다. 햇빛이 비치는 곳만을 바라보고 어두운 곳은 바라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찬란한 햇빛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음(負陰) 즉 음을 덜어내고 포양(抱陽) 즉 양을 더하는 양쪽 측면을 모두 동원하여 상황을 타개한 후에야 비로소 빛을 이용하여 밝게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