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조용히 때로는 급하게 밀려오는 사조(思潮)가 있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 곧 ‘평화무드’다. 그러함에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애써 외면하며 힘과 권력에 의존하여 시대를 역행하려는 나라가 있다. 바로 거대 중국이다. 북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향후 세계질서에 있어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도할 책임국가임을 미국은 물론 세계는 인정해야 하고, 국제관계의 최종결정자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중국의 강압적 논리는 왠지 듣기가 거북스럽다. 지난달 후진타오에 이어 주석직에 오른 시진핑의 이와 같은 당돌하다싶을 정도의 생각과 표현은 두 얼굴의 중국을 잘 대변하는 의미 있는 대목이다.

2010년 중국 정부의 교묘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민주화 운동가이며 문학평론가인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 오슬로의 평화상 수상자 자리엔 빈 의자만 류샤오보를 대신해야 했다. 당시 류샤오보는 2008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08헌장(중국의 진보적인 학자와 변호사 그리고 저술인 등이 공산당 일당독재 폐지와 정치개혁을 요구한 내용)’ 서명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국가 전복 선동죄로 11년형을 선고 받고 4년째 감옥에 갇혀 있는 처지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74년의 수상역사를 가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직접 수상하지 못한 경우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민주화의 기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등 9명의 인사가 있었지만, 빈 의자로 대신했던 적은 중국의 류샤오보가 처음이다.

당시 중국은 가족과 친지 그리고 지지자들까지 출국금지조치 시켜 수상을 대행하지 못하게 하는 악랄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류샤오보의 가족까지 가택연금 상태에 있게 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요즘 AP통신에 의해 세계로 빠르게 타전됐다. 뉴스에 따르면 “류샤오보가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26개월째 아무런 법적근거도 없이 아내 ‘류샤’를 가택연금 했으며, 전화와 인터넷도 차단한 채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게 하고 있으며, 24시간 10여명의 건장한 감시자들에 의해 철통같은 감시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불편한 진실을 세계는 접하게 된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계속 이어진다. 티베트인들의 분신행렬은 이제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어찌 그와 같은 일이 연일 발생해야 하는가를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는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2009년 2월부터 2012년 11월 현재까지 티베트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78명이나 분신을 시도했으며, 그중 아이를 둔 젊은 엄마, 어린이, 학생, 승려 등 64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분노의 불길 속에서 숨져가야 했다. 이제 세계는 분신행렬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외면할 명분이 없다. 세계가 나서 분신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근본적 해결책 마련에 앞장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자신의 몸을 불사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결단해야 한다. “국제관계의 최종결정자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려면 시대에 순응(順應)해야만 한다. 과거 후진타오 시대 아니 그 이전의 시대가 남긴 역사적 불편한 진실을 세계 앞에 그 진실을 밝히고 도도히 흐르는 평화의 기운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몇 가지 중국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56개 소수민족의 내분 가능성에 대해 인위적으로 잠재우려 해선 안 된다는 점을 직시했으면 싶다. 중동 튀니지에서 무허가 청과물 노점상인 모하메드 부하지지(26)의 분신으로 촉발된 자스민혁명이 중동 민주화의 상징이 된 것과 같이, 티베트의 분신행렬이 중국 민주화의 또 다른 불씨로 번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임을 명심해야만 할 것 같다.

자유와 평화를 위한 시대적 조류를 힘과 권력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란 이치를 깨달으라는 충고다. 뿐만이 아니다. 이웃한 나라들과의 마찰, 즉 역사를 왜곡하고 거짓되게 공정(工程)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진리다. 진리는 없어지지도 변하지도 않는 것임을 안다면 무모한 공정은 멈춰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될 때 지구촌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국제관계의 최종결정자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들리리라 생각된다. 역사의 섭리와 함께 물밑에서부터 다가오는 평화의 기운은 선택도 기호도 아니다. 온 인류가 마땅히 누려야 할 고귀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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