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 더 이상 사분오열 돼서는 안 돼

본지는 앞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봤다. 종교란 신이 만든 것이고 인간은 신의 소생으로서 이제는 타 종교간 반목과 배척이 아닌 상생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럼 그 중심에는 기독교가 본이 되어서 신의 소생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번호를 통해 기독교의 참다운 의미와 역할은 무엇이며, 진정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어떠한 자세로 이 세대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기독교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기독교라 하면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정확한 표현의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통합하여 지칭하는 단어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AD 1세기에 활동한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 죽음, 부활에서 유래한 종교로서 로마 가톨릭교, 동방정교회, 개신교가 포함되고,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종교를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 하면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개신교의 역사를 보면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천주교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세기경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국교로 선언한 이후 로마 가톨릭은 널리 전파됐지만 16세기에 와서는 부정부패의 온상지가 되고 만다.

이른바 종교개혁의 결정적 계기가 된 면죄부 사건으로, 당시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강제적인 면죄부 판매에 동의할 수 없었던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루터가 1517년 10월31일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붙인 것으로부터 지펴진 개혁의 불씨는 결국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눠지는 결과를 낳았다.

 

기독교의 변질

이렇듯 원래 기독교의 뿌리는 하나였지만, 사람의 생각이 섞이고 교회를 권력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기독교의 본래 의미가 변질되고야 말았다. 이 땅에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가 뿌리내린 지 120년이 넘었지만 지금은 갈라지고 갈라져 개신교의 교단 수만 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성경 해석만 해도 개인의 생각마다 다르니 여러 가지 주석이 넘쳐 나고, 자기의 교리에 맞지 않으면 나뉘고 이단시하며 배척하니 기독교 안에서 먼저 하나 되지 못하고 계속 변질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이뿐 아니라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각 나라의 문화와 환경, 즉 토속신앙 등의 혼합도 변질의 한 요소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장독대에 정한수 올려놓고 복을 빌던 조상들의 풍습이 있어 기복신앙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앙의 목적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출세와 안락한 삶을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또한 사람들은 축복하고,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 등 자기 입맛에 맞게 설교하는 교회를 찾다보니 목사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 성공과 관련된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전하는 현실이 됐다.

이렇다보니 세상 말을 전하는 교회는 부유해지고 권력 있는 자의 교회가 되어버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교회는 약하고 가난한 교회가 됐다. 이것이 과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셨던 뜻이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참 하나님의 뜻

예수님은 하늘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 곧, 하늘복음을 이 땅에 전하고자 오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영원히 사는 신의 소생이었던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기에 다시 회복하시고자 한 것이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 상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키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 것은 인생들이 그 뜻을 깨닫고 거듭남으로 진정한 신의 소생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작금의 기독교 현실은 어떠한가. 예수를 믿는다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셨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맞아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그 길을 지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피하여 지나가고,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돌봐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이 강도 맞은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이 바라시는 제사장(목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길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종교는 신이 만든 것이다. 기독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담겨 있고, 그 뜻을 준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는 얼마나 될까.

누가복음 18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올 때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다. 마태복음 7장21절 이하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의 현주소

지금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성경 말씀보다는 사람의 교훈을 더 따르고,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이나 수많은 신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해 주석교리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독교는 수십 수백개의 교단, 교파로 갈라져 서로를 이단시하고 있다.

또 대형교단과 대형교회들은 그 막강한 권세를 얻고자 서로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교회문제를 사회법정에서까지 제기하며 교권을 얻고자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안티 기독교인들이다. 안티라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교권을 휘두르고 있는 목회자들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가 3월23일~4월10일까지 전국의 개신교 모임이나 세미나에 참석한 목사 4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목회자 자질 부족(42.% 이하 중복응답)’이 꼽혔다. 

다른 설문에서도 ‘목회자의 언행불일치’가 개혁의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개신교 목회자 스스로가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들은 선민사상에 심취해 배타적인 시선으로 타 종교를 이단시하고 오만에 빠져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어디로 갔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종교는 ‘으뜸가는 가르침’이다. 각 종교의 경전마다 과정이 다를 뿐 모든 종교의 종착점은 같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를 사해 주었건만 다시 죄를 짓는다면 무엇으로 회개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종교는 갈등과 반목이 아니다. 지금은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해하고 상생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조선시대 격암 남사고는 ‘십자가의 도로 싸워 이기니 거기가 십승지(十勝地)다. 그 곳엔 일만이천(一萬二千) 도통군자(道通君子)가 있음’을 말해 왔다. 석가 또한 다라니경 38:8에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라 말했다. 이는 ‘언젠가 예수(耶蘇)께서 오시면 나의 설파하는 도리는 기름 없는 등과 같으니라’는 뜻으로 참 진리를 가지고 예수가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유교, 불교의 경전에서도 기독교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큰 가르침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는 이를 직시하고 기독교뿐 아니라 종교세계와 인류를 위해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공존을 위해, 화합과 평화를 이 땅에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종교를 만드신 신의 뜻이고, 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본분이라 할 것이다. 신의 소생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가 되길 소망한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너희가 내 안에,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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