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의 발상지 청도군 신도마을을 찾아서

우리 민족은 국가적 어려움과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온 국민이 단합하고 협동하여 위기를 극복해 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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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발 개발도상국 가운데 거의 독보적으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해왔고,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지난 97년 외환위기도 온 국민이 단합하여 극복해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저력 있는 민족이다.

최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국민의 행렬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과 사상 문제를 떠나 온 국민이 하나가 된 모습으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해 내기도 했다.

근대 우리민족의 과거를 보게 되면 35년간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 끊임없이 계속되는 국난과 자연재해 속에 우리 농촌은 살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자포자기 속에 절망과 가난, 배고픔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난과 배고픔의 ‘절망’을  나 혼자만이 아닌 내 이웃, 내 마을, 나아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살자는 ‘희망’으로 전환시킨 거국적인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청도 신도마을의 잘살기운동에서 비롯된 바로 ‘새마을운동’이었다. 이것은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가 돼 서로 상부상조하고 협동하는 정신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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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군 ‘신도마을’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신도마을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찍이 노는 사람이 없고 술독에 빠진 사람이 없으며 노름하는 사람이 없는 3無의 마을로 주민들의 협동심이 유달리 강하고 부지런해 개미마을이라 불렸다.

이러한 신도마을의 협동심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추진되기 오래 전인 1957년 청도 신도마을에 김봉영씨가 귀향하면서 신도마을의 잘살기 운동은 시작됐다.

신도마을은 농로를 개설하고 부엌을 개량, 부락의 면모가꾸기 사업, 소하천 정비 등과 신거역을 개통했으며, 특히 1967년부터는 마을회의에서 마을 발전을 위해 잘살기 3대 목표를 설정하고 마을 주민 모두가 이를 실천하기로 결의하면서 주민 모두가 하나 되어 본격적인 잘살기 운동을 전개했다.

1969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인해 신도마을은 폐허가 됐지만 신도리 주민은 타고난 부지런함과 협동심으로 태풍 전의 마을보더 더 깨끗하게 마을을 정비했다. 그해 8월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용열차를 타고 경남수해지역을 시찰하면서 차창너머로 깨끗하게 단장돼 한눈에 봐도 말끔한 신도리 마을의 모습을 보고 기차를 정차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이 “마을을 기왕에 복구할 바에야 더 잘 가꾸어 살기좋은 마을로 만들겠다”는 신도리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동정신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된 박 전 대통령은 전국 마을을 ‘청도 신도마을’ 처럼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도록 지시하게 된다.

특히 이듬해인 1970년 4월22일 한해대책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구상 중인 자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마을운동을 처음으로 제창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주민들의 자발적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 농촌은 5000년의 세월이 지나도 부흥하지 못하고 지금의 빈곤을 반복할 것”이라며 “빈곤을 자기의 운명이라고 한탄하면서 정부가 뒤를 밀어주지 않으므로 빈곤 속에 있다고 탄식하며 자기의 빈곤을 타인의 책임인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는 농민은 몇 백 년의 세월이 걸려도 일어설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농민, 관계기관, 지도원들이 서로 협조해 농촌의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벌여보자”며 “그 운동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고 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신도마을은 근대화의 중심이 된 새마을운동의 효시가 됐고, 신도마을이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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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의 정신 이어받아 경제위기 극복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우리나라 역시 먹고 살기가 쉽지만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해 달라는 아우성, 최저임금을 삭감한다는 정부의 정책 등으로 나라 안팎은 술렁이고 있다.

배고픔으로 허덕였던 기성세대들은 1970년대 경제성장을 이룩한 새마을운동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됐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위치하고 있는 신도마을에 있는 당시의 주민들을 만나 새마을운동의 배경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에 대해 들어봤다.

김봉영(84)씨
신도마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1957년부터 마을주민들에 의해 일명 ‘잘살기 운동’을 펼쳐 43일 만에 농로를 개설하고 밤나무와 감나무를 심는 등 부촌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김봉영(84)씨의 선구자적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김씨의 지도 아래 마을사람들은 잘 따라주었고 1969년 제방을 쌓고 있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을 우연히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산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고 한다.

잘살기 운동의 선구자였던 김씨는 길을 만들고 소득이 높은 복숭아, 사과 등의 과일을 심으면 틀림없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 마을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김씨는 “요즘 우리 마을을 전국적으로 수천명이 방문하고 또 내가 밖에 나가면 주위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어서 이 일을 한 것이 정말 보람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전종렬 사무국장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전종렬 사무국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마땅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신도마을 주민 스스로가 제방복구와 기차역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새마을운동이 생겨났다는 것에 신도마을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도마을에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은 2006년에 추진되어 2009년 4월14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5월 한 달 동안 1500여명의 사람들이 다녀갔고 몽골,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이곳을 방문해 배우고 갔다. 전 사무국장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기념관이 준공된 의미는 우리나라가 발전하게 된 정신이 새마을운동의 정신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상징적인 의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청도군 신도마을을 발상지 삼아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다시금 대한민국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뻗어나가 지구 전체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전 사무국장은 “청도를 사랑하고 긍지를 갖고 있는 저로선 기념관에서 하는 일들이 즐겁다”며 “청도군을 열심히 홍보하고 앞으로 아이들의 교육의 장으로 지금 이렇게 살게 된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들 덕분이라는 것을 심어주고 느끼게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만해도 우리나라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비율이 70%에 달했다. 가난과 궁핍함에 허덕이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복지환경과 윤택한 문화시설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웠던 시대에는 이웃 간에 상부상조하면서 힘든 가운데에서도 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오늘날은 삶의 질이 향상되고 지적 수준이 높아져있지만 오히려 이웃 간의 벽은 높아지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없어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청도군 신도마을에서 60~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일어났던 그때와 같이 오늘날도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시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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