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선 (사)한국기업윤리경영 연구원장

요즈음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스스로 엄정해야 할 검찰에서조차 뇌물, 성추문 사건과 같이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버스나 택시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 역시 여야가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약속이 깨지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바 크다. 택시업계를 편들어주자니 버스업계가 걸린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푸념처럼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금이 가 버렸다.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각종 이해관계 단체의 요구도 봇물을 이룬다.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재원조달 능력도 없이 받아들인다면 집권 이후 정책실현에는 거리가 멀다. 신뢰를 상실한 정권은 안정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신뢰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이다. 상대방이 선의가 있고, 약속한 사항을 지킬 것이고,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신뢰가 없는 곳에 협력이 있기 매우 어렵다. 반면에 신뢰가 쌓이면 협력적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은행의 적금통장과도 같이 신뢰구좌에 믿음이 쌓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애로우(K.J. Arrow)는 신뢰를 사회적 윤활유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뢰가 없다면 동반의식이 약해지고 서로 배우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믿음이 사라진다. 마치 칡과 등나무와 같이 복잡하게 얽히고 대립과 충돌을 일으킨다. 빈부, 노사,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는 근본적 이유의 하나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정치사회학자 후쿠야마는 우리 사회를 저신뢰사회로 분류했다. 얼마 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가운데 3명은 사람을 믿을 수 있고, 나머지 7명은 조심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불신은 그대로 드러난다. 국회를 불신한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73.4%로 나타났는데, 백화제방식 선거공약과 여론의 신뢰정도를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서로 믿는다는 것은 사회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하루빨리 갈등과 불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불신과 갈등으로 인해 자원과 시간, 열정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을까. 3년 전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갈등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연간 300조 원으로, 갈등의 심도는 OECD 국가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고 분석했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실현하고 있는 국가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국가라고 어느 학자는 지적한 바 있다. 서로 신뢰할 때, 경제활동의 거래비용은 감소되고, 조직운영은 원활하고, 정부는 효율적이 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연구에 의하면 타인을 신뢰한다고 응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10% 상승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0.5% 내지 0.8%가량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낮은 신뢰로 인한 거래비용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낮추는 요인이라는 얘기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경제성장에 집중하고 있는 노력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는 국가기관이 국격을 떨어뜨리거나 행정기관과 교육기관, 의료기관, 지자체가 신뢰와 품격을 떨어뜨린 부끄러운 사건이 무척이나 많았다. 금융기관, 기업의 부끄러운 사건은 세기조차 힘들다. 사건이 발생한 후 제도적 헛점과 시스템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말은 반복적인 원인분석이다.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는 말은 더 이상 믿기 힘들게 되었다.

신뢰회복은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건전한 성장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사회적 도덕가치와 법령준수라는 커다란 틀에서 구체적인 실천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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