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국민대학교 교수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이렇게 하여 긴 여정이 끝난다. 한 바늘, 그리고 또 한 바늘, 이렇게 하여 찢어진 바지를 꿰맨다. 벽돌 하나 그리고 또 벽돌 하나, 이렇게 하여 높은 벽을 세운다. 한 조각 그리고 또 한 조각, 이렇게 눈이 쌓인다.”

작자미상의 어느 누군가의 말이지만 공감이 가는 글귀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의 반복을 통해 이뤄질 수 있듯이 작은 일이지만 지속적인 반복은 타고난 천재를 넘는 멘탈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복해야 할까. 무조건 반복만 하면 천재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반복에도 방법이 있다. 반복(反復)이 갖는 한자적 의미처럼 ‘처음 온 길을 부정하고 다시 온 길을 돌아가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즉 스포츠, 학문, 예술 등 무언가를 반복할 때 어제 반복한 것을 부정하고 문제점을 찾아, 오늘 또 다시 반복하여 해결하고, 내일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과정을 가진 반복이어야 천재를 넘는 반복이라 말할 수 있다.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그의 저서 <이성의 삶 The Life of Reason>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하는 운명에 처한다’라고 하면서 꾸준한 진보와 발전을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기억해야 하며 거기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반복에는 기억과 의식이 살아있어야 한다. 아무런 의식 없는 반복은 반복의 가치를 잃게 한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나탄 밀슈타인(Nathan Milstein)은 어린 시절 스승에게 하루에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스승은 “아무 생각 없이 연습하면 하루 종일 연습해도 모자라지만, 온 신경을 연주에 모으고 손놀림 하나하나에 집중해 연습하면 2~3시간이면 족하다”라고 했다. 그렇다. 반복에는 집중이 있어야 한다.

집중을 하다보면 삼매에 빠지는 정신세계를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세 시간이 삼분처럼 느껴지고, 좋아하는 스포츠나 게임에 몰입하고 있으면 한나절이 찰나처럼 느껴진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사물과 한 몸이 된 상태(being as a thing)”로 묘사했고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초점의식(focal awareness)”라 하였다. 무아경지, 몰입과도 같은 개념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을 느끼는 의식은 사라지고, 심지어 우리 몸 자체도 잊은 상태가 된다. 즉 지금 하고 있는 대상이 곧 내가 되는 것이다.

리처드 세넷의 장인 ‘craftman’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도공은 점토 반죽을 쟁반에 놓고 빚은 뒤 회전판 위로 옮겨 성형을 한다. 그가 손을 대는 흙이 반죽에서 그릇으로 변한다. 그 변형은 흙에 머무는 게 아니라, 도공의 생각도 계속 흙을 따라간다. 당연히 그는 반죽 빚기와 성형 두 가지 작업의 기술이 어떻게 다른지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안다. 존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단순히 ‘이걸 만드는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의식이다.”

바로 반복에 집중된 의식이 있어야 매일 발전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 내려가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즉 세밀하게 독서할 것을 요구했다. “책을 읽다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날 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라고 하였다. 골프계의 전설 벤호간은 “하루 연습을 쉬면 내 자신이 느끼고, 이틀을 쉬면 캐디가 알고, 삼일을 쉬면 세상이 다 알게 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눈으로 동물을 보자. 그 동물이 그 동물이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완견만 보더라도 네 발로 걷고 ‘멍멍’ 하는 소리를 내며 주인을 따르는 동물 중 하나로 보이며 애완견과 애완견 간에 큰 능력 차이가 없다. 인간을 창조한 그 누군가가 신이라면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그렇게 큰 차이를 두고 만들지 않았다. 신은 인간 각 개개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었다. 천재란 부단한 노력, 지속적인 통찰을 통해 스스로 창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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