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김유선(1950~  )

보자기는 싸기 위해 비어 있다
감싸주기 위해 종일을
비워놓는 그녀
온종일을 기다려서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보자기 같은 그녀

 

 

[시평]
지금은 다양하고 좋은 가방들이 많아, 우리네 삶에서 그다지 보자기가 많이 쓰이지 않는다. 보자기 하나로 모든 것을 싸서 다니던 시절, 보자기는 우리의 책 보따리가 되기도 하였고,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였고, 어머니의 장바구니가 되기도 하였고, 먼 길 떠나는 사람의 봇짐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또 그래서 우리네 삶을 부둥켜 안아주는 무엇으로 보자기는 늘 우리의 생활 속에 그렇게 있었다.
이렇듯 모든 것을 감싸주는 보자기 같이, 감싸주기 위하여 늘 비어 있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면, 그 사람 얼마나 든든할까.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 모두 모두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보자기 같은 사람. 오늘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날이 추워만 지는 초겨울의 길목에서 더욱.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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