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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바벨론 소속의 목자와 그에 속한 전도자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지연 강사

본 장에서 울며 애통하는 자들은 땅의 임금들과 상고들이다(계 18:9∼11). 땅의 임금들은 영적 바벨론(구약의 선민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육적 바벨론을 빙자한 영적 바벨론) 소속 목자들이요, 상고들은 그 목자들에 속한 전도자들이다.

바벨론의 음녀가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을 주관하고 있고(계 17:3), 일곱 머리는 일곱 산 곧 일곱 왕이다(계 17:7~10). 땅의 임금들은 이 일곱 왕들(일곱 우두머리 목자들)에게 소속된 목자들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15절의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은 바벨론에 소속된 모든 목자와 교인들이다. 즉, 이들은 예수님 초림 때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던, 뱀이라고 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마 23장)과 같이 오늘날 계시록 때 교권을 잡고 계시록 13장의 하늘 장막을 멸망시킨 영적 바벨론에 속한 교단의 목자들과 교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상고는 영적 상고로, 영적 상품을 매매하는 자들이다(마 13:45~46 참고). 본문의 상고는 만국을 소유한 바벨론 음녀 아래 있는 자들로, 바벨론 상품을 매매하는 자들이다. 이 무리들이 음녀의 사치의 세력(교권)으로 인해 음행의 포도주(마귀의 교법으로 된 교리와 교법)로 무역한 것이며 장사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 비유를 베풀어 장래에 있을 일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주인)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에게 각각 금을 몇 달란트씩 주고 떠났고, 주인이 다시 올 때(재림) 금을 준 자들에게 장사하여 (이익을) 남긴 것을 보여라 하고 그 행한 대로 상과 벌을 주었다고 하셨다.

또 마태복음 13장에는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 진주 장사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금과 진주는 문자 그대로의 금과 진주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고 빙자한 것으로, 사실은 귀한 영생의 말씀을 가리킨 것이며(잠 2:1∼5, 시 12:6, 마 7:6, 계 3:18 참고), 이 말씀으로 장사하라 하심은 전도를 하라는 말씀이었다.

이와 같이 본문의 상고(상인)도 사단 바벨론의 교리로 장사한(말씀을 전한) 것이다. 이러므로 본문의 상고는 바벨론의 전도자요, 그 상품은 바벨론의 교리이다. 이 교리가 곧 뱀의 독인 들포도주이다(신 32:31∼33).

이는 말세에 약속된 배도자(계 1:19∼20 참고), 멸망자(계 17:3∼7 참고), 구원자(계 10:7, 계 12:5, 계 21:7 참고) 중 멸망자의 상품(교리)인 것이다.

이 증거는 보고 듣고 한 증거이므로 참이다(계 1:2, 계 22:16 참고).

 


바벨론의 권세 아래 있던 세속주의 인생들을 말하는 것

예장합동 서유상 목사

본문에 보면 울며 애통해 한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9절에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라는 말씀을 하고, 11절에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라는 말씀을 하고, 15절에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라는 말씀을 하고, 19절에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불리는 모든 자들이 너무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 울며 애통하는 자들은 땅의 왕들, 땅의 상고들 즉, 세상의 상인들이며 배 부리는 모든 자들, 즉, 선장과 선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울고 애통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바벨론 때문이다. 바벨론의 멸망이 이들에게 울음과 애통함이 된 것이다. 여기서 눈물과 애통함이란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벨론 사람이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을 울고 애통하는 것인가?

그러나 9절에서 땅의 왕들이란 바벨론 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세상 왕들을 뜻하고 있다. 또 11절에서 말하는 땅의 상인들이라는 것도 바벨론 상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의 눈물과 애통함은 단지 바벨론 사람이라는 민족적인 차원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들은 왜 바벨론을 위해서 울고 애통하는 것인가?

바벨론의 권세 아래서 사치하고 음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에게 행복의 끝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상고(상인)들도 11절에 바벨론의 멸망을 인해서 다시는 상품을 살 자들이 없기 때문에 울고 애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상고들은 세상의 문화의 극치와 과학, 경제 등으로 하나님 없이 넉넉히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세속주의 인생들을 말한다.

 

 

통합종교와 결탁하여 관장하는 상품들로 치부한 자들

바른복음성경연구원 옥정남 목사

이 질문은 전 회의 질문과 연관되는 것이다. 통합종교 본부에서 관장하여 부에 부를 쌓고 있는 일에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 바이어 상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일의 수단과 방법은 상업적이고 물질적인 것이지만 그 동기와 발단은 종교적인 데 있다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세계 통합종교 체제에 동조하고 굴종하는 각 종교 지도자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각 종교 자기 산하의 신자들로 하여금 헌금하게 하고 재산을 바치게 하여 통합종교 본부에 바치고 리베이트(이익)를 받게 되므로 실물의 상인들이 상품을 무역하여 이익을 얻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계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정치계를 보더라도 정치헌금 받은 것들이 들통이 나서 얼마나 시끄러운가? 그리고 그러한 뇌물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수없이 많은가? 참으로 통탄스럽다. 들통이 나서 일생 살아 온 것을 망치고 자살하고 애통해도 엎질러진 물같이 소용이 없다.

사탄의 활동은 점점 위세를 더하여 간다. 7년 대환란 후 3년반 끝에 그러한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동시에 뒤집혀지는 것이다. 그 혼란은 상상을 불허한다.

특히 이 질문에서 통합종교에 결탁하고 빌붙어 물질적인 이익을 도모한 세상 상인들이야 오히려 정당한데도 적그리스도 세계정부에 의해 통합종교가 망하니 그 부를 추구할 길이 갑자기 사라지므로 애통해 하지만, 세계 통합종교의 부와 사치의 동기와 발단이 된 각 종교 지도자들과 일꾼들은 완전히 사기꾼들로서 이익의 줄이 끊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기친 것에 대한 심판 받을 것을 양심상 감지하고 두려움으로 애통해 하는 것이다. 세상 상인들과 애통의 질이 다른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 18장에서 애통하는 상인들을 물질적인 상인들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 통합종교에 결탁한 상인들이기에 실상은 그 발단과 동기자인 각 종교의 일꾼들이 그 주요 인물임을 명심하여야 하는 것이다.

비단 이 때만 아니더라도 지금도 각 종교의 일꾼들이 자신의 종교적 일로 물질적 명예적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면 계시록 18장의 애통할 상인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부자되세요”가 인사말이 되고 있는 오늘날 세태, 말세에 재물을 쌓고자 기복적 신앙에 길들여지고 있는 기독교는 그 환란의 날들에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주 잔을 마셔야 할 것이다(약 5:1~5). 지금 경성하여 바로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니 정말 시급하다.

 

 

심판받는 바벨론의 상품을 팔 수 없어 애통하는 육적 상인

예장합동 배명식 목사

요한계시록 18장은 대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대음녀는 17장에서 그 이름을 ‘큰바벨론’이라고 했는데(계 17:5), 18장에서도 분명히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바벨론이란 세세토록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가르치심의 적에게 붙인 이름이다.

바벨론은 땅에 속한 사단의 교회로서 이미 17장에서 짐승에 의해 멸망되었는데(계 17:16∼), 다시 짐승을 경배하는 세계적 새 종교의 사회정책의 대성공의 결과로서, 여기에 소위 이상의 대도시가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상의 상업도시는 매우 부도덕하고 사치 낭비하다가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는 것이다(계 17:16∼17). 하나님은 사치 교만한 자를 벌하신다. 음녀는 세력과 부를 마음껏 누리고 교만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한번 가해지는 때에, 겨우 하루 동안에, 아니 일시간에 멸망되어 버린다.

세상의 영화와 그 부, 그 세력이 아무리 크고 또 세차게 보인데도 그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나오라는 것은 아브라함에 대한 명령 이래, 성경이 일관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경고이며 명령이시다(창 12:1~, 레 20:26, 민 16:21∼, 시 45:10∼, 미 2:10∼, 행 2:40∼ 등).

이 땅의 임금들, 상인들, 선원들은 이 도시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이 도시를 짓는다고 소비한 재물과 육신의 향락을 추구하며 살던 것이 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제는 거래를 계속할 수도 없으며, 거기에서 물건을 사올 수도 없고, 모든 재물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들은 낙담하여 우는 것이다.

나는 중동의 석유산유국들의 부의 축척이 어느 날인가 완전히 잿더미가 될 날을 상상하면, 세상의 부의 흐름에 대한 성경의 예언만이 미래를 밝혀주는 빛이 됨을 더욱 깨닫게 된다(옵 1:17∼18).

요한계시록 18장16절에서 바벨론 멸망에 대한 땅의 상인들의 반응은 10절에서 ‘화 있도다’로 번역된 ‘우아이’는 고통이나 슬픔을 나타내는 감탄사로서 음녀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야기된 땅의 왕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대했는지 잘 보여주고, 여기의 땅의 상인들의 비탄에 찬 고백과 병행된다.

땅의 왕들이 음녀 바벨론에 대해 ‘큰 성, 견고한 성’으로 언급한데 비해 땅의 상인들은 바벨론에 대해  ‘큰 성’이라고만 언급한다.

견고한 성은 막강한 권력을 뜻하지만, 큰 성은 곧 ‘큰 도시’로서 ‘거대한 시장’을 뜻한다. 말하자면 땅의 상인들은 도시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자신들의 경제적 이윤확대의 길이 근원적으로 봉쇄되었다는 사실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도들의 휴거가 있고 난 후, 세상의 마지막 시간인 7년 대환난의 와중에서 세상에 소망을 두고 남은 자들의 비참함을 요한은 가르쳐주고 있다.

사람의 영혼도 그들의 상품인데, 나는 나의 영혼이 구원받아 그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으리라는 소망으로 살고 있지만, 18장19절에서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해하는 해상운송업자들의 행위를 보라!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는 행위는 고대세계에서 지극한 슬픔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었다(겔 27:30∼31).

하늘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이지만,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은 ‘값비싼 상품들’이 보배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보배와 같이 여겼던 바벨론의 값비싼 상품을 이제는 더 이상 다룰 수 없게 됨으로 그들은 애통해 하였던 것이다.

대환난 기간에 세계종교와 적그리스도 치하의 경제 조직 속에서 세상에 소망을 두고 부를 축척하고 살았던 무역업자와 해상의 운송업자들을 생각해 보라. 사도요한은 1세기의 밧모섬에서 21세기에 일어날 어느 날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구원받은 성도는 위에 것을 추구하고 살아야 한다. 역사의 어두움과 더불어 새벽이 오고 있다.

 

▶ 다음호 질문: 12. 요한계시록 17장14절에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는
                     누구를 두고 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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