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요즘 아이들의 기를 살린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아이가 떼를 쓰거나 울기만 하면 다 들어주는 부모님들이 많다. 심지어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허용해 주는 부모님도 있다. 특히 사회적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부모님들의 모습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진료실에서 필자가 아이를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할 때 아이는 손에 쥔 장난감을 들고 나가려고 한다. ‘네 장난감이 아니니 허락을 구하라’고 말씀해주시는 부모님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부모님들은 그냥 내버려 두거나 혹은 한술 더 떠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갖고 나가서 놀고 있으라고 말해준다. 게다가 아이가 진료실을 헤집고 다니면서 기물을 다 쓰러뜨리거나 쓰레기통을 엎어도 아이에게 주의를 주기는커녕 그냥 바라보거나 오히려 흐뭇하고 사랑스런 표정으로 지켜보시는 부모님들도 있다. 진료 대기실에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렸을 때 야단을 치지 않고,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라고 말씀하시는 엄마도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사회 경제적인 변화 요인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화가 되는 시대에는 경제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자녀를 많이 출산해도 일자리가 넉넉했고, 교육비도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경제 성장이 둔화되거나 혹은 후퇴하는 시점이므로 자녀 교육비 부담이 커졌고,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학교와 사회에서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 위기의식을 느낀 부모는 자신들이 보다 더 개입하여 자녀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자녀의 숫자 또한 줄어들어서 대개 2명 정도이고, 외동아이도 현저하게 많아졌다. 이 때문에 자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 무조건적인 허용과 사랑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육의 결과는 참담하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부모님에게 의존적이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간다는 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모가 다 알아서 해 주기에 자신의 목표가 없어지고, 부모의 적절한 통제와 훈육의 부재로 인하여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나아가 어른 또는 사회적 규칙에 불복종한다. 이는 사회 적응에 중대한 갈등과 결함을 불러일으킨다. 자기 통제력이 낮고 참을성이 없는 아이는 매사 하고 싶은 활동만 하기 때문에 연령에 적절한 각종 발달적 과제 혹은 학업 성취를 완수하지 못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라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이로 말미암아 대인관계에서 갈등과 분쟁을 경험할 것이고, 조직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우며, 심지어 사회적 외톨이 혹은 독불장군으로 지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성취 지향성이 낮아서 노력을 게을리 할 것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자녀를 무조건 떠받드는 대신에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해나가게끔 도와줘야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는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이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심어주거나 혹은 잘못된 행동을 교정시켜 주는 부모의 역할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즉 자녀에게 애정적이고 반응적인 반면에 엄격한 규율을 이행해야 한다. 만일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않고 고집을 피운다고 하면 아이의 고집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나쁜 행동을 지적한 후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한다. 아이의 연령에 적합한 독립적인 행동도 요구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발달적인 힘에 의해서 상당 부분 여러 능력을 터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아이가 분명하게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훈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나중에 몸만 커진 ‘아이 같은 어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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