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남영동 1985’스틸 컷. (사진제공: (주)아우라픽처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간의 진실… 故 김근태 의원 실화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생각을 고쳐 잡고 나갔죠. 협조만 해주신다면 앞일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영화는 흔들리는 조명 아래 간사한 당국 인사의 목소리가 민주화를 열망한 한 청년의 마음을 꾀며 시작한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운명을 예상한 듯 청년은 이렇게 물어온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전 국민의 숨소리까지 검열하던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85년, 남영동 치안 본부 대공분실 515호로 끌려가 22일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고문을 당한 故 김근태 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가 베일을 벗었다.

고 김근태 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에선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 역)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정지영 감독은 고인의 ‘남영동’ 수기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 시대 때 김근태 의원 외에 수많은 고문 피해자가 존재했기에 주인공의 이름은 다르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감독은 영화에서 ‘김근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한 사람의 이야기가 돼버리기 때문에 유족인 인재근 의원에게 양해까지 구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경찰공안수사당국이 ‘빨갱이’를 축출해낸다는 명목으로 80년대 남영동에 있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벌어지던 ‘공사’ 즉 고문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가족과 함께 목욕탕을 다녀오던 길에 경찰에 연행된 김종태는 정체 모를 남자들의 손에 눈이 가려진 채 남영동으로 끌려간다.

‘빨갱이’ 축출로 당국이 핏대를 세우며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이던 시절. 김종태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반정부세력은 모두 빨갱이’라는 공식을 성사시키기 위해 수사관들은 김종태에게 “진실을 말하라”며 신문하기 시작한다.

시멘트 바닥에 내쳐지고 수사관들에게 밟히며 온갖 폭행과 인권이 묵살되던 현장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김종태의 심정은 영화 초반 몰입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김종태의 거짓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영화는 ‘장의사집 둘째 아들’로 불리는 고문 기술자 이두한(이경영 역)을 등장시키며 좌중을 긴장에 몰아넣기 시작한다. 정지영 감독은 이두한을 두고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영화에선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왜 가해자들은 한 청년을 물과 전기로 혹은 폭력으로 고문하려 드는지, 왜 피해자는 가해자들의 호의호식을 위해 가해지는 고문을 힘없이 받아야만 하는지, 군부 독재의 한 획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 영화 ‘남영동 1985’시사회가 지난 5일 정지영 감독과 배우 박원상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번 ‘남영동 1985’에서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고문’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출연한 주ㆍ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무게 있고 신중하다.

정지영 감독의 전작 ‘부러진 화살’에서 ‘박준’ 변호사 역을 맡았던 박원상은 이번 영화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는 연기를 통해 “체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해”라는 소감을 연발할 정도였다.

특히 박원상은 코와 입으로 물이 세차게 쏟아지는 물고문에 고통스러워했다. 스텝들은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배우가 안전한지 마음을 졸이기까지 했다고. 고통스럽게 물고문 연기를 마친 박원상의 반전 있는 사실은 그가 어릴 때부터 물 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실제 물고문에 쓰인 ‘칠성판’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김종태는 몸서리를 치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이것이 연기인지 정말 배우 박원상의 울부짖음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이번 영화에선 사실적 묘사를 위해 박원상처럼 주ㆍ조연이 고문 때문에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박원상은 “아침 일찍 양수리 세트에 나가서 12시 다 돼 숙소로 퇴근했다. 경영 선배나 손이 매운 천희, 어깨를 지그시 눌렀던 의성 형님 등 현장에서 진짜 미운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신뢰가 있었기에 영화를 끝까지 마쳤고 또 ‘컷’을 하면 모여 앉아 웃기도 해 한 달 반을 버틸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처럼 화려하지만 퍼포먼스적인 고문보다 19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 실제 받았던 잔혹한 고문과 시대의 진실을 담아낸 정지영 감독의 2012년 마지막 문제작 ‘남영동 1985’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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