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이 책은 총 300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고, 인물, 문화, 사회, 경제, 정치, 역사, 민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소재는 우리가 매일 보고 겪는 것들이어서 ‘터무니’ 같은 일상 어휘부터 ‘일본식 연대와 독도 문제’처럼 첨예한 국제관계까지를 망라한다. 매 주제마다 저자가 찾아낸 것들의 내용은 흥미롭고 풍부하며, 역사의 메시지는 통렬하다.

저자는 역사학자가 과거와 하는 대화는 심심풀이 수다나 잡담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역사학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역사가 현실에 바로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오래된 경고를 알지만 그 위험성보다는 현실에서 눈을 떼는 데에서 오는 위험성이 더 크다고 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는 메신저, 우편배달부를 자임하며 과거의 역사가 오늘에 건네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책 전체에 담긴 풍부한 역사지식은 우리가 몰랐던 많은 것들을 일깨워 살아 있는 교양과 상식이 되게 하고, 놓친 것, 무심한 것들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시대를 넘나드는 역사의 통찰은 현대인의 관성과 타성을 돌아보게 하는 정문일침이 된다.

◆ 창씨 개명과 신불출 (p63)

자기 ‘이름’으로 권력을 조롱할 수 있을까? 역사에 이런 사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신흥식이라는 만담가가 있었다는 말로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불출이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불출(不出)은 바보라는 뜻이다.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에 따라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할 때, 그는 공연 중 자기 이름을 ‘구로다 규이치’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 이름 뜻이 기가 막히다.

구로다는 한자어로 ‘玄田’이고 규이치는 ‘牛一’인데 각 쌍의 글자를 합하면 축(畜)과 생(生)이 된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욕할 때 흔히 ‘칙쇼’라고 했는데, 이게 바로 축생이다. 이후 신불출은 ‘창씨개명의 본의’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초주검이 된 뒤 나왔다.

그런데 사실 그의 공식 창씨명은 ‘강원야원’이었다. ‘강원야원’의 일본어 발음은 ‘에헤라 놀아라’이니, 이 역시 세태를 조롱하는 뜻이 담겨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 의미까지는 알지 못했다. 전병하라는 사람은 성 다음에 야(野)를 붙여 전야병하(全野秉)라고 지었는데 일본 발음으로는 ‘덴노 헤이카’ 즉 ‘천황폐하’였다. 그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트위터 아이디로 대통령을 조롱한 사람의 계정이 ‘유해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접속 차단 조치를 당했던 사건을 펼쳐놓는다. 자기 이름으로 권력을 조롱한 역사가 새삼스럽지는 않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저자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한다.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

전우용 지음 / 투비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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