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이 책의 제목인 ‘노년의 역사’가 시사하듯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노년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곱 명의 역사가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및 르네상스. 17~20세기 등 시대별로 집필을 분담하며 노년의 모습을 조명했다.

이 책은 노년의 역사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일단 사회사적인 관심과 접근방식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하는 물음에 맞닿는다. 즉 일, 건강, 재산, 가족, 사회적 관계 등 노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소를 담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책은 노인의 가정생활과 가족관계, 노년기의 섭생과 질병, 노후 부양과 상속, 생업활동과 은퇴, 연금제도, 노인 의료 및 구호 등에 대한 서술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에는 부모, 무엇보다도 노년의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존경과 배려에 관한 진술이 그득하다. 이 시대에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길러준 양육비를 갚는 형식으로 결핍과 의존의 시기에 있는 부모를 돌보는 것이 자녀의 의무로 여겨졌다. 예를 들면 기원전 5세기와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아테네에서 자녀는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노년의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솔론이 제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테네의 법령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자를 시민권이 박탈된 법의 상실자로 규정할 정도였다. 아테네에서 이는 종종 사형 다음 가는 형벌로 받아들여졌다. 부모를 천대한 혐의가 있는 자녀는 어떤 제3자라도 소송 철회나 패소 시 뒤따르는 처벌의 위험 없이 고발할 수 있었다.

반면 로마에서는 그런 특별한 입법이 없었다. 서기 2세기에 이르면 재판관이 부모의 불평에 따라 딸과 아들에게 재정적으로 가능하다면 부모의 생계를 보장하도록 요구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고작이다.

이러한 노년의 사회사와 더불어 이 책이 다루는 또 하나의 주제는 노년의 문학사이다. 노년의 사회사가 노년기 삶의 물질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을 조명했다면, 노년의 문학사는 늙음과 노인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 관념과 표상의 측면에 주목한다.

즉,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늙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노년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주제로 한다. 여기선 노년의 일상 경험을 기록한 일기와 편지, 노년에 관한 의학, 철학 및 종교 저술, 노년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 등을 담고 있다.

사실, 노년에 대한 풍경은 17세기 문학작품에 많이 담겨 있다. 17세기 이탈리아 연극에는 ‘역겨운 중매 혼인을 고집하는 탐욕스러운 늙은 아버지가’ 많이 등장했는데, 이는 남성의 노년에 대한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늙은 남성에 대해 돈에 욕심이 많고, 성에 탐욕스럽고, 으스대고, 수다스러우며, 참견 잘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이와 관련, 17세기 여배우였던 이사벨라 안드레이니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우리 아버지들의 탐욕이 가져온, 젊음과 노년 사이의 이 이상한 결합은 많은 폐단을 가져온다. (…) 젊은 여성들은 그런 결혼에 따른 보상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이더라도 돋보기를 쓴 남편들이 요구하는 절약을 싫어한다.”

당시엔 일반적으로 늙은 아버지들이 금전적 이득을 위해 딸들에게 자신의 친구나 사업 파트너와의 결혼을 강요하지 않을 때는 그들 스스로가 딸 또래의 여성을 열심히 찾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문학작품에서 노인들은 존경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우둔하고 육욕을 탐닉한 늙은 노인에 대한 조롱은 설사 이러한 노인상이 실제 현실에 비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 유럽인의 내면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이처럼 책은 노년의 사회사와 문화사를 서술하면서 일률적이고 통일된 역사상을 제공하기보다 차별화를 통해 역사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풍부한 기록물과 230여 컷의 도판을 통해 노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팻 테인 외 지음 / 글항아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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