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한다면, 눈 내린 진흙밭에 기러기 발자국조차 남기지 못한다면, 나는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죽으면 세상이 눈과 같이 녹아 우리의 발자국도 사라지는 것인가. (…) 다시 어둠속으로 들이민다는 것인가, 어떤 논리는 기차 바퀴의 연결대처럼 뒤로 갔다 앞으로 나아가고, 칙칙폭폭은 독후감이고, 막힌 콧구멍에 독감이든가 (…)” (p265)

이 알 듯 말 듯한 언어의 향연을 저자는 ‘냉귀지’로 명명한다. ‘냉귀지’는 한마디로 시설(詩設)이다. 시이자 소설이다. 이 새로운 장르는 시이면서 소설인데, 동시에 시도 아니면서 소설도 아니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서사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밝히는 이 시대에 ‘냉귀지’의 ‘미션 임파서블’은 나쁜 언어와 싸우는 것이다.

“혈기왕성할 때는 동생하고 싸우고 독재와 싸웠지만, 나이 들어서는 팔다리를 덜 혹사하면서 정명을 해치는 자들과 한판 엉켜 붙고자 하다. 마음을 흐리는 거품과 찌꺼기와 싸우고자 한다. 적당한 숫자의 구경꾼과 활로어만 있어 준다면, 못난 자신과 또 한판 신나게 붙어보고 싶다.”

1988년 제1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시야에서 유성처럼 사라졌던 <냉귀지>가 비행접시처럼 새롭게 나타났다. 판소리에서 노래와 이야기가 하나이듯이 <냉귀지> 또한 시와 소설이 한통속이다. 이는 판소리에서 이야기와 랩이 분리되지 않는 것과 같다. 스토리에만 치중하는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놀라운 언어의 변용에 낯설 수 있고, 감성적 표현에만 치중하는 독자라면 저자의 놀라운 은유의 역사 해석에서 길을 잃을 수가 있다.

저자는 ‘시설’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아니면 진화된 오늘날의 독자와 교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미료로 맛을 낸 현 문학의 언어와 달리 하얀 종이 접시 위에 각종 야채와 고기와 양념 같은 말들을 가득 言져놓고 한바탕 비비고 부볐으니, 시설의 맛이 아직 생소한 독자는 입맛 대신 음식을 탓하겠지만, 소위 “뛰는 놈, 나는 놈, 그 위에 뭘 좀 아는 놈”은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갑자기 밥 먹다 말고 일어나 말 춤을 출 것이다. 그이것이 진정한 맛이요, 말이요, 이야기다. 이 맛 저 맛 중에 말맛이 최고이다.

최병현 지음 / 지와사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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