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오늘날 우리는 온통 ‘통계’에 둘러싸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뉴스에서 날마다 쏟아지는 기사들의 상당수가 ‘통계’에 기초해 작성되고 있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주부라면 유심히 물가상승률을 확인하고, 진학을 앞둔 학생이라면 대입경쟁률과 진학률을, 앞날을 내다보는 투자자라면 산업가동률을,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대선 여론 조사 결과에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어떤 논리를 전개할 때, 가령 분석기사나 논문 같은 경우 통계 수치는 필수다. 그런데 이처럼 통계와 통계학이 전성기를 맞이했음에도 그것이 우리와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통계와 철학의 접점을 모색하려는 시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통계학을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의 인식 세계를 구축하는 근저에 웅크리고 있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곧 세계가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느냐, 아니면 세계의 움직임에 우연이라는 것이 끼어들 여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사실, 세상의 모든 역사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도록 신이 모든 것을 정해 놓았다는 기독교적 믿음은 오랫동안 인류의 사고체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합리적 사고와 뉴턴 과학으로 대변되는 물리학이 발전하면서 모든 일은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인과’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팽배해진다. 이러한 관념 아래서는 당연히 ‘우연’이라는 여지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처음에는 통계학 역시 이 같은 사조를 증명하는 대변자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연을 긍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에밀 뒤르켐 이후에 결정론은 여러 부분에서 공격을 받게 된다. 그는 전체로서의 사회가 단순한 개인의 총합이 아니며, 전체에서는 개인 단위에서는 없었던 특성이 자체적으로 나타난다는 창발주의적 입장을 내세웠다. 그의 주장은 결정론을 거부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후에 유전학자였던 프랜시스 골턴이 나타나 결정론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는 구슬 낙하 기계인 큉컹크스를 통해 정규분포가 보여 주는 오차의 법칙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함으로써 우연과 규칙성이 지니는 불가분성의 관계를 파악했다. 즉 규칙에는 항상 우연의 요소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우연을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유형의 법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양자물리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마저 “도깨비 같다”고 말한 양자물리학 역시 ‘우연’의 논리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다. 양자물리학의 발전 역시 기존의 결정론적 물리법칙이 지배하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저자는 우연이 어떻게 과학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세계는 어떻게 다시 우연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살펴본다. 무엇보다도 근대 서구 사상이 환원 불가능한 우연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역사적 연구에 철학적 분석이 더해졌을 때 얻어지는 깊은 통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전해준다.

이언 해킹 지음 / 바다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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