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고속성장’ ‘자기계발’ 등을 외치던 국민들이 달라졌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는 온통 ‘비워라’ ‘천천히’ ‘휴식’ 등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새로 나오는 상품·프로그램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붙기 마련이다. 또 주말에는 산을 찾는 도시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회가 ‘힐링’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힐링’을 원할까? 또 이 ‘힐링’은 어떠한 모양으로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걸까?

경쟁에 지친 현대인 ‘육체·정신 치유’ 필요… 대선 후보 정책에도 영향

[천지일보=이솜 기자] ‘힐링(healing)’ 열풍이 거세다. 힐링을 주제로 한 많은 책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가 하면 TV 프로그램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대선 후보의 정치행보에도 ‘힐링’이 빠지지 않는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힐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상품들도 대거 등장하고 있다. 힐링 여행 전용의 자연 휴양림은 전국적으로 148곳이나 되며 템플 스테이와 둘레길까지 합치면 300곳이 넘는다.

이뿐 아니라 경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도시농업도 농업(agriculture)과 여흥(entertainment)을 결합해 애그리테인먼트라 불리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도시텃밭 면적은 2010년 대비 3.7배, 도시농업 참여자 수는 약 1.5배 늘어났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약 70만 명이 도시농업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인문학 강좌, 수면용품, 레저상품 등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힐링 전문 인터넷 방송까지 생겼다.

생명전자방송국 운영기획팀 김선영 팀장은 “시간을 내 힐링 체험을 하기 쉽지 않은 현대인들이 주 고객”이라며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힐링 에너지’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힐링 관련 브랜드 출원건수는 2008년 26건, 2009년 40건, 2010년 65건, 2011년 72건에 이어 올해 7월 말까지 86건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몸이나 마음의 치유’라는 뜻의 힐링.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8월 29일 취업포털 커리어는 직장인 5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힐링이 필요한 이유는 63.5%가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풀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13.7%)’ ‘행복을 느끼기 위해(12.5%)’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10.4%)’ 등의 응답이 뒤따랐다.

결국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 때문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힐링의 의미로는 ‘치료·치유’가 52.9%로 1위를 차지했다. ‘위로(28.8%)’ ‘따뜻함(5.0%)’ ‘유행(3.8%)’ ‘상담(1.9%)’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스스로를 힐링하는 방법(복수응답)으로는 ‘휴식·여행’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친구·연인·가족과의 시간 보내기(50.4%)’ ‘운동(36.9%)’ ‘공연·영화관람 등 문화생활(34.6%)’ 등의 순이었다.

힐링 열풍은 성공만을 외쳤던 사회적 분위기가 공감과 소통, 그리고 사람 자체를 중시하는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반영하기도 한다.

지난 2007년부터 국내 200만 부 이상 팔린 ‘시크릿’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출간된 인문계열 서적의 3분의 1 이상이 자기계발 서적류로 도배됐었다. 그러나 올해 10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점령한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포함, 최근 베스트셀러의 키워드는 힐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대선 후보의 정책 주제의 변화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각 주자들이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국민 행복’ ‘사람이 먼저다’ ‘저녁이 있는 삶’ ‘내일이 기다려진다’ ‘진심의 정치’는 2007년 이명박 후보의 ‘성공시대’와는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원섭 교수는 “IMF 이후 사회가 불안해진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며 “해체되는 가정이 점점 많아지고 일자리가 쉽사리 잡히지 않는 등의 문제와 더불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점점 복잡해지는 반면 희망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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