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1990년 한 해, 전 세계에서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내 아버지는 그들 중 하나였다.”

이 충격적인 메시지로 저자는 서문을 연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심리학자의 길을 택했던 그는 대학원생 시절 아버지를 자살로 여의었다. 막막한 슬픔 속에서 그는 죄책감과 그리움 그리고 자살자의 유족에게 쏟아지는 숱한 편견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저자는 “자살이란 나약함의 표상이자 수치스러운 행동이라는 관념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고 고백한다.

그의 아버지는,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세상을 등졌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자살을 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성공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조지아 대학교 법학부를 차석으로 졸업했고, 사회에서 수완과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또한 충동적이지도, 약물을 남용하지도, 불 같이 화를 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자살을 했다. 왜 그랬을까? 이 지점에서 시작된 그의 자살에 대한 의문은 개인적 슬픔인 동시에 치열하게 탐구해야 할 직업적인 과제로 남게 됐다. 이후 저자는 이 분야에 치열하게 매진했고 자살에 관한 대중의 시각 및 향후 자살행동 연구 방향에 일대 변혁을 몰고 온다.

그간 자살에 관한 이론이 여러 개 나왔지만 저자에 따르면 수세기 동안 논리적으로 납득이 갈만한 이론은 한 손으로 꼽으면 충분할 정도였다. 매해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현상에 비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자살과 관련해 규명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존에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살을 막는 예방법에 따른 이론을 분류하자면 크게 ‘경보파’와 ‘기각파’로 나뉜다. 경보파는 누군가가 ‘자살’이란 말을 입에 담기만 해도 그 자체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간주하고 경보를 울려야 한다고 믿는 태도를 말한다. 저자는 경보파의 반응을 ‘과잉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달리 기각파는 자살행동을 대수롭지 않은 것, 말하자면 잠재적으로 자살경향성을 가진 사람이 관심을 얻기 위해 취하는 교묘한 제스처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환자가 자살을 시도해도 ‘관심을 받고 싶어서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런 이론의 틀에서 벗어나 저자는 어떤 요소가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찰한다. 가령 치명적인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이 자살행동을 부추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단절이 심화돼 스스로를 타인의 짐으로 간주할 만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끼는 지점에 다다를 때, 비로소 그들의 자살 위험도는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자살에 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전개하기 위해 발생률, 연령‧성별‧인종, 신경생물학적 지표, 정신장애, 약물남용 등과의 관계, 충동 성향, 아동 비만, 치료와 예방노력, 자살의 동시다발 현상과 ‘전염’ 등을 비롯한 사실들을 고찰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가 밝힌 요소 중 ‘치명적인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과 ‘성별 자살 확률’의 관계를 살펴보자. 남성은 여성에 비해 자살로 사망할 확률이 약 네 배 높다. 그런데 자살 시도 확률은 여성이 훨씬 높다. 왜 이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남성 자살 시도자들의 치사율이 높은 것은 폭력성향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미국의 남성 자살사망자는 ‘총기’를 사용한다. 이와 달리 여성은 ‘약물’을 많이 사용한다. 이처럼 자해 능력에 따라 사망에 이를 확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온하게 여겨지던 풍토 속에서 저자는 전공인 임상심리학은 물론 유전학, 신경생물학, 정신분석학, 여타 인문사회학의 도구를 총동원해 ‘자기 살해’라는 행동을 통찰해 낸다.

한편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 심연에는 아직도 깊은 슬픔의 우물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이제 보다 일반적인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버지에 한정된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내일이면 또다시 전 세계 2500개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잃는, 여러 해 전 우리가 겪었던 그 아픔이 재현될 것을 생각하면서 가슴 아리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 나는 이렇게 공유된 모든 것들이 자살에 관한 중대한 문제들을 파헤치는 데 적용하며, 또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맥락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토머스 조이너 지음 / 황소자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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