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다원주의’는 실재가 여럿이라는 이론을 지향점으로 추구한다. 이에 반하는 ‘일원주의’는 다원주의에서 표방하는 다양성의 배후에 하나의 궁극적 실재나 하나의 참된 인식, 혹은 하나의 올바른 기준 등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가령, 신(神)과 같은 존재 말이다. 중세까지는 일원주의가 지배적이었다면, 다원주의는 용어의 탄생과 사상의 주요 원천이 근대에 닿아 있다. 그 원천의 이름은 바로 ‘자유주의’이다.

이 책은 ‘미학’의 영역에서 다원주의를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다원주의를 예술과 연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다원주의를 비평과 관련지어 통찰하고 있다.

일단 미학에서 최초의 예술 이론으로 꼽는 것은 모방론이다. 모방론은 고대 그리스 예술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예술의 외부 대상이나 사건을 실재하는 것처럼 생생히 재현하기를 바랐고, 그런 예술을 높이 평가했다. 모방론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했지만, 18세기를 넘어서면서 많이 쇠퇴했다.

그렇지만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외부 세계를 생생히 모방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여전히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사실주의나 포토리얼리즘 등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더욱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가상 현실은 외부 세계를 생생히 모방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미학에서 두 번째로 등장한 이론은 표현론이다. 표현론은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예술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낭만주의는 프랑스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낭만주의는 ‘이성의 빛’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소중한 세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꿈, 신화, 신비, 환상, 무한, 불가해 등의 영역이었다.

표현론의 대가인 톨스토이에 따르면 예술은 예술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도 동일한 감정으로 경험하게끔 전달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달되는 감정의 질이다.

표현론 다음은 형식론이다. 모방론이 세계의 외부에, 표현론이 작가의 내부에 초점을 맞췄다면 형식론은 작품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형식론에 의하면 어떤 대상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선, 색, 소리, 이미지, 문자 등 예술이 지닌 형식적 요소다. 형식론을 통해 이제 예술은 예술 작품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나 작가로부터 벗어나 예술 작품 자체만의 고유한 형식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이처럼 미학에 대한 사조는 점점 변화해 왔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궁극적으로 이 같은 사조에 대한 ‘비평’이다. 이제 예술 현상은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 한계를 넘어 더 폭넓고 자유롭게 다양성을 구가한다. 다원론의 시대에는 모방적 작품도, 표현적 작품도, 형식적 작품도 모두 예술로 인정받는다. 한 화가가 오늘은 모방적 그림을 그리고, 내일은 표현적 그림을 그리고, 모레는 형식적 그림을 그리고 글피는 무엇을 그려도 무방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처럼 다원론의 시대에는 어떤 거대한 형식의 프레임이 한 가지 양식을 정당화하고 그 양식이 다른 양식을 억누르는 풍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이 같은 다원론적 미학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어떤 하나의 비평의 방법이 그 많은 세계를 모두 탐색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다양한 비평의 방법이 필요하며, 예술은 다양한 비평의 방법을 통해 풍요로워진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예술을 중심으로, 3장에서는 비평을 중심으로 다원주의 미학을 살펴본 후, 4장에선 다원주의 미학이 가진 몇 가지 문제점을 거론한다.

김진엽 지음 / 책세상 펴냄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