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만화 ‘호빵맨’의 작가 야나세 다카시는 올해 91세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백화점 광고부의 다자이너로 일하다 그만두고 만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만화 원고료가 디자이너 월급보다 세 배나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만화 그리는 것이 행복했다.

야나세 다카시가 ‘호빵맨’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53세 때였다. 지금 우리 사회로 치면 직장에서 물러나 은퇴를 할 나이다. 아이들이 과연 좋아할까, 스스로도 확신을 하지 못한 가운데 시작한 작품이었지만, 예상을 깨고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방송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최고 인기 프로로 자리 잡았고 올해로 무려 23년째 방송중이다.

현역 최고령 만화가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옆에서 보기에 안쓰럽고 힘겨워 보이는 일도 실제로 해보면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이 되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돈도 들어온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

이 할아버지, 참 운도 좋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 역시 “인생이란 자기 입맛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생의 70%는 운이고, 10%는 노력이다.”라고 말했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즉 노력이 3이면 운이 7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력 없이는 운이 저절로 오지 않는 법이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이란 책에는, 야나세 다카시와 함께 각 분야에서 최고령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로들이 등장한다. 103세 성악가, 96세 커피 전문점 주인, 89세 피아니스트, 78세 기타리스트, 84세 양조 기술자, 85세 만담가, 51세 경마 기수, 88세 파일럿, 93세 스키어, 90세 디제이, 90세 바텐더, 83세 수상인명구조원 등이다.

이들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현업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다. 103세 최고령 성악가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노래는 재미있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다. 젊은 친구들 중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거나 일상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팔자 좋은 노인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천수 누려가며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복이 또 어디 있을까. 모두 이렇게 살고 싶지만, 안 되는 게 문제다. 이 역시 운칠기삼, 운이 좋은 경우다. 노력 없이는 운이 따르지 않는다지만, 확실히 운이 좋아야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당장 취업이 걱정인 우리 청년들도 그렇지만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현업에서 물러나야 하는 중장년들도 이건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다.

피아니스트나 만화가처럼 자유직업이 아닌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나면 정말 난감해진다. 직장을 떠나고 나면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최고령 현역 하는 말들이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최고의 야구 명장 김응용 감독이 8년 만에 현역 감독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이다. 그가 71세라는 걸 생각하면, ‘사오정’들은 마음이 어지럽다. 명장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반가움과 함께, 이제 사십, 오십인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역시 운칠기삼이란 말인가.

김응용 감독은 구단 사장을 거쳐 다시 감독으로 돌아왔다. 서열로 치면 자리를 낮춘 것이다. 김응용 감독처럼, 나이나 서열에 상관없이 재능과 열정이 있으면 누구든 다시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명장 김 감독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의 본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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