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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계시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비교 불가

예장합동 이준행 목사

요한계시록 1장3절에 나오는 계시는 특별계시 또는 초자연적인 계시로서 성경을 말씀하고 있다. 자연계시 또는 일반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특별계시를 안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다. 특별계시인 성경을 꾸준히 듣고 지속적으로 지켜 행함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특별계시를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비교 불가다.

그래도 그 차이를 몇 가지 말하자면 이렇다. 주 되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신을 자기의 주인으로 알고 사는 것의 차이이며, 구원의 약속과 부요함을 누리는 것과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여 사는 것의 차이이며, 창조의 목적을 알고 사는 것과 시간의 흐름에 내맡겨 사는 것과의 차이이며, 무한자원을 가지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것과 유한한 세계에서 끝없는 전쟁으로 자기 것을 쟁취하며 사는 것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는 자는 미래 사건을 위해 예비할 수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박성하 목사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1:1)”는 말로 시작된다. ‘계시’로 번역된 헬라어 ‘아포칼룹시스’는 ‘휘장을 벗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종교적인 문헌에서는 미래를 벗기는(들춰내는) 것을 뜻한다.

요한계시록 1장1~3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주신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관한 예언이 예수-천사-요한(선지자)이라는 통로를 통해 그 종들(신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선언되었다.

질문의 의도가 명확하진 않지만, 상식적으로 예언을 읽거나 듣는 자들은 그 예언을 알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모를 것이다. 또 예언을 알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은, 닥쳐올 미래 사건을 위해 예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부지불식 간에 예언된 사건을 맞게 될 것이다.

혹 이 질문이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7)”는 구절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본문의 의미를 곡해해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11장16~30절은 예수님의 많은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책망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것(예수의 메시아성을 입증하는 권능)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다.

또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유대적 표현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어떤 사람에게는 감추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신다거나, 혹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계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리는 그것을 거절하려고 마음 먹은 자들에게는 숨겨져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서 예언의 성취를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 빛을 거절한 반면, 지식에 있어 ‘어린아이’에 불과한 죄인들과 세리는 받아들였다.

예수께서는 이 현실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유대적 표현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특히 ‘계시를 받는자’는 결코 말세에 나타날 어떤 특정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읽고, 듣고, 지켜나갈 때 축복의 유무 결정

예장합동 배명식 목사

요한계시록은 장차 ‘속히 될 일들’에 대해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내용상 예언서(계 1:1)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한계시록은 시작부분과 종결부분에 하나의 서신으로서의 형식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1장1~3절의 내용은 본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며,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이다(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장차 속히 될 일에 관한 예언으로서 천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 요한에게 전해진 것이다(1절).

기록자 요한은 자신이 본 예언적 환상 곧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에 대해 모두 증언하였음(2절)을 말한다. 그리고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질문이 어떤 의도와 답변을 요구하는지는 질의자의 주관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겨져, 잘못된 질문이라 사료되지만),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음과, 이는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임(3절)을 말하고 있다.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의 차이를 굳이 말한다면, 믿음으로 읽고, 듣고, 지켜나갈 때에 깨닫는 축복이 있음을 강조해야 될 것이다. 그것은 본서의 내용이 인간의 문학적 상상력이나 헛된 환영의 산물이 아니라, 신적 계시의 산물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이 신적 계시의 산물이라는 것은 독자가 이 책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 준다. 즉,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인류의 미래 문제에 대한 흥미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동기로 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마음과 귀를 기울여 읽고 듣고 순종해야 할 주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단들이 마구잡이로 해석하는 혼란으로, 도무지 접근해서는 안 되는 비서라도 되는 것처럼 멀리 취급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

평신도라도 본서에 대한 갈급한 심정으로 건전하고, 보수신앙을 표방하는 주석이나, 훌륭한 목회자의 강해설교집을 구입하시면 좋으리라 여겨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풀빛주석, 바클레이주석, 엑스포지더스주석,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핸드릭슨주석 등을 참고하고, 강해 설교집은 G.E.래드, 팀 라하이, 존 F. 왈부르드박사, 홀린세이 교수의 책을 참조하고, 국내의 조용기 목사, 이동원 목사, 김서택 목사의 강해설교집 등을 참고한다.

 그 외에도 종말론에 관한 외국의 저명한 저서들이 국내 기독교 서점에 많이 번역되어 있기에 관심을 가진다면 구입하여 읽고, 분별해 나간다면, 비록 저자마다 약간의 해석 차이가 있을지라도 마침내 진리의 강수에 도달하여 은혜의 진리를 건져 올리는 기쁨을 얻으리라 여겨진다.

 

 

계시 아는 자, 하나님나라 완성과 그 영광에 동참

예장합동 김재열 목사

가장 중요한 관건은 ‘계시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계시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 알고 모르는 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래서 이 차이는 요한계시록 1장1~3절에서 계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과 같다 할 수 있다.

1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쓰인 ‘계시’라는 말은 베일을 벗김, 폭로의 뜻인데 여기서는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로 신약에서 단 한번 이 곳에 사용된다. 그리고 유다묵시문학의 글에 나온다. 그래서 ‘예언(propheteia)’이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봐서, 단순히 미래에 대해 점치는 식으로 미래에 대한 것으로만 말하는 것이다. 다분히 질문에서도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1~3절을 조금만 살펴보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1절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자기가 본 것’이다. 3절에서는 ‘예언의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예언이란 말을 단순히 미래에 대한 점치는 것이라는 오해는 구약에서 예언했던 선지자들을 살펴보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은 미래 그 자체만을 의지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와 결부된 미래를 언급한다.

시간의 전체를 포괄하는 말씀 선포이다. 구약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에게 미리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고, 반드시 진실된 마음과 즉각적 행동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결과를 요구한다.

이러한 의미를 여기에 옮길 수 있다. 여기 언급된 ‘계시’도 과거·현재·미래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기록된 말씀이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복되다고 한다. 단순히, 예언의 말씀이 미래에 대한 언급이라면 그것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당시 예배 형태에서도 한사람이 읽고(단수), 여러 사람이 듣고, 행하는 것(복수)으로 이루어진다. 구약적 사고도 듣고 행하는 것은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이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듣고, 지켜야 할 윤리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6~21절에서도 진리로 인한 삶의 변화를 목적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말씀을 믿음으로 윤리적 행동, 삶의 변화를 목적으로 시작해서 마무리 되어짐을 알 수 있다.

이 예언은 단순히 미래의 운명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고 실현된 종말적인 말씀과 더불어 미래에 완성될 종말의 상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미리 말하는 것을 통해서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복음에 착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용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때 즉, 읽고, 듣고 지켜 행할 때 이미 도래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동참하게 되며 그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그 영광에 동참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계시(과거·현재·미래를 포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를 아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인 것이다.

 

 

하늘과 땅 차이, 계시를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준비할 것

예장합동 김창영 목사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자신의 뜻과 계획을 사람에게 알리신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말씀을 사도요한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신 계시된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을 위해 주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초림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이고, 재림도 구원을 위해서이다. 예수님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는 사람에게 요한계시록을 주신 이유는 말씀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은 계시록 21장에서 말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앞으로 행하실 심판과 장차 들어갈 새 예루살렘의 청사진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성경)을 주신 목적은 지키게 하므로 이런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규칙을 정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조건부적인 복이다. 아담은 이 조건을 지키지 않으므로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은 단순히 복된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지키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을 지키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모세의 글도 동일하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5:33)”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이 이론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동일한 맥이다.

계시를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늘과 땅 차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이유는 사회에서 적응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이다. 대기업에서 일할 간부를 채용할 때에도 기업을 경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듯이 하나님의 계시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하므로 올바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계시를 모르는 자는 준비하지 못할 것이고 계시를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준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사도요한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시고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 그 사자들이 교인들을 훈련시켜 준비하게 하신 것이다.

계시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키는 것이다. 계시를 알지 못하면 지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3절에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이다. 불순종했던 사람들이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을 닮게 되므로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다.

 

 

다음호 질문: 5.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계 6:12~14)”
본문에 나오는 천지와 해 달 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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