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구 박사(‘돈’의 저자)
그러면 이 첨수도상의 옛 한글은 누가 언제 주조한 것인가? <①>을 ‘돈(don=money=錢)’으로 발음하는 민족은 누구인가? 주조 및 유통 시기는 춘추시대 중기 이전으로 본다. 서기전 6세기 이전이다.

중국학자 황석전(黃錫全)은 ‘선진화폐연구(先秦貨幣硏究, 252쪽)’에서 첨수도는 연(燕)나라에서 주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학자 진융문(陳隆文)은 첨수도가 태행산(太行山) 동쪽 즉 지금의 석가장(石家莊), 보정(保定) 일대에서 유통되기 전까지 연(燕)나라와 제(齊)나라 두 국가의 경내에서 도폐가 주조되고 발행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빠른 첨수도는 연나라와 제나라 두 국가가 아닌 융적(戎狄)의 첨수도라고 과감히 주장했다.

그렇다면, 문제의 ‘<①>’첨수도는 제나라 도폐나 연나라 도폐가 아니고, 중국과 다른 이민족(異民族)의 칼이라 할 수 있다. 진융문이 이를 ‘융적(戎狄)의 첨수도’라고 본 것은 그 당시 융적으로 불린 산융(山戎), 고죽(孤竹), 영지(令支) 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돈’ 첨수도 출토지역이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요서의 승덕(承德)에서 출토된 흉노도에 도서(倒書) <②>가 나왔는데, 이 승덕 일대는 고죽국의 중심지역이였으며, 또 요서의 장가구(짱지아커오) 일대에서 출토된 침수도(針首刀, 바늘돈칼)에서는 <③>자가 발견되었는데, 중국학자 주활(朱活)은 죽(竹)자로 보고, 이 첨수도 화폐문자의 죽(竹)자는 분명히 고죽족(孤竹族)과 관련된 것이라 했다.

역시 중국학자 팽방형(彭邦炯)도 갑골 복사(卜辭)중의 죽 <④>후(侯)가 문헌에서 말했던 고죽국(孤竹國)인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융적의 첨수도는 실제로 돈칼을 주조한 사실이 있는 고죽국의 유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고죽국은 어떠한 나라인가? 난하(灤河)의 유역을 강역으로 삼았던 고죽은 나라이름을 두 글자로 쓰고 있는데, 우리민족의 전통으로 보면 고죽은 고조선의 제후국이다. 고조선도 모르는데 고죽국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고조선의 제후국의 하나인 고죽국에서 우리의 옛 한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과 그 훈민정음인 한글의 기원을 연구하는 일은 완전히 별개로 보아야한다. 그럴 경우 한글의 역사가 더 멀리 소급됨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고대사에 대한 시야는 그 만큼 넓어질 것이다. 중국의 역사반란인 그 동북공정을 격퇴시킬 지혜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 필자가 동북공정을 ‘역사 쿠데타’라 하는 것은 역사의 소유권을 강제로 바꾸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강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현 중국의 요서지방이 고대에 고조선의 강역이었다는 것은 이미 비파형동검의 분포로 확인된 것이며, 필자는 한걸음 나아가 그 지역의 정치체가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죽국임을 고대화폐로써 추론하였다.

특히 그 고대화폐에서 옛 한글의 출토로 중국문화와 구별되는 한국 고대문화의 독립적 존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이 옛한글에 의해 고죽국은 더 이상 은나라 제후국이 아니고, 고조선의 제후국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이 확보된 것이다.

그리고 비파형동검, 청동거울, 침수도 화폐 등의 유물에 일관되게 나타난 번개무늬 <⑤>가 그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이로써 요서지방에 대한 중국의 역사 조작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중국인들에게 요서지방은 고사하고 요동지방과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날조가 과대 망상임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고조선의 강역을 난하(灤河)에 한정하는 것을 죽(竹)자의 화폐 출토로 서부(西部)의 장가구까지로 그 강역을 더 확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영토침탈만이 침략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남의 역사를 침탈하는 것도 같은 의미의 침략행위이다. 10년째 접어든 중국의 역사침략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그 해답을 찾아야한다. 동북공정은 현재의 중국 땅에서 한국역사를 송두리째 지우겠다는 야욕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국 땅에서 전개된 우리 조상의 과거 역사를 드러내 중국사와 한국사를 구별하는 경계(境界)작업을 해야 한다.

역사의 경계작업이란 대한(大韓)과 중화(中華)를 구별하는 사관(史觀)의 줏대를 세우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사관의 줏대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일제식민사학자들에게 당했듯이, 또 한번 중국패권주의 사학자들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최근 상고사에 대한 재해석과 원전번역 등이 연이어 출판되고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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