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뉴스천지)

전통주 맛 결정하는 일등공신‘ 누룩’
쌀·녹두 등 곡류로 발효균 번식
맛·향·영양 뛰어나 가치 높아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라.”

춘향가 중 ‘주반등대’ 대목에는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졌던 술 이름만 십여 종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우리 술은 종류만도 360여 종에 이른다. 이 술들은 다 무엇으로 빚을까.

전통주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근본이 되는 재료는 하나, 바로 누룩이다.

우리 땅에서 만들어진 누룩은 발효과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특히 왕실에서 만들던 궁중술의 주재료인 향온국은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도 쉽사리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상의 지혜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 제조법을 알 수 있는 문헌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요즘 술을 빚는 누룩은 대부분은 일본누룩인 코오지(麴)를 섞어 만든다. 이는 ‘누국 국(麴)’ 자를 일본말로 훈독한 것으로 찐 쌀알에 오리제(Aspergillus oryzae)라는 황국균을 뿌려 배양한 균사체다.

하지만 순수 전통누룩은 배양균을 섞지 않고 곡류에 술을 발효시키는 곰팡이를 직접 번식시켜 만든다. 또 궁중술을 빚는 향온국은 이화주 등을 담그는 쌀누룩과 녹두만을 사용한 누룩, 밀과 녹두를 섞어 만든 누룩을 사용한다.

쌀누룩은 먼저 약초물에 찹쌀을 불린다. 불린 찹쌀은 밀가루를 덧입혀 습도가 높은 여름, 걸어놓으면 발효되면서 자연스럽게 국균이 나온다. 이 쌀누룩은 빻아서 곱게 가루를 낸다.

이 가루로 술을 담그면 아주 부드럽고 일반 술과 달리 걸쭉한 고형분 형태의 이화주가 만들어진다. 오늘날로 치자면 요구르트와 같은 형태다.

이화주는 들어가는 쌀의 양에 비해 술의 양이 적어 민가에서 흔히 빚어 먹을 수 없는 고급술이었다.

부드러운 이화주는 유산균이 많고 영양가가 높아 소화기가 약한 어린아이나 어르신도 즐겨 먹을 수 있었다. 또 겨울에는 추운 날씨로 손이 트면 거즈에 이화주를 적셔 얹은 채로 화롯불을 쬐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피부가 보들보들해진다.

녹두만을 사용해 만든 누룩은 왕이 마시고 또 신하에게 하사하던 향온주를 만들었던 주재료다.

먼저 녹두 겉껍질을 벗겨낸다. 이 파란 껍질은 냉한 기운이 강해 벗겨 내지 않으면 누룩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겉껍질을 벗긴 녹두는 곱게 분말로 간다. 절구에 빻은 약초로 물을 내려 녹두가루와 섞는다. 이때 약초물은 녹두가루가 부슬부슬하게 뭉쳐질 정도로 약간만 넣는다. 수분량이 25~30% 정도면 적당하다.

이후 뭉쳐진 녹두가루를 발로 꼭꼭 밟아 여름에 발효시키면 된다. 약초물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 쉬이 상하는 녹두를 발효될 때까지 썩지 않게 한다. 천연 방부제인 셈이다.

독성이 있는 이 약초는 옛날 강이나 냇가에서 고기를 잡을 때 찧어서 물에 풀기도 했다. 하지만 해독성이 좋은 녹두와 섞이면 독성이 사라진다.

이 향온국은 술맛을 좌지우지하는 주요한 재료이다. 열두 가지 약초를 섞어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한 가지 약초로 만든 향온국을 최고로 친다.

이런 귀한 누룩은 많은 술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귀한 것이다. 또 술을 빚으면 떫은맛, 신맛이 덜하다. 소주로 내릴 수도 있다. 막걸리를 걸러 증류한 소주는 원주인 막걸리가 맛이 좋아야 소주 맛이 좋다.

몇 해 전부터 전 세계에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세는 어느새 잠잠해지고 있다. 막걸리 대부분은 일본의 국균을 주입해 만든 누룩으로 빚어지고 있다. 참 한국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맛과 향, 영양 삼박자를 고루 갖춘 전통막걸리를 생산해낸다면 막걸리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선조가 만들어 온 전통 누룩의 다양한 개발이 돌파구가 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