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대통령 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정치판이 가관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가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눈과 귀를 더럽힌 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한 듯하다. 친구 사이의 우정도 의리도 정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실체적 진실은 본인들만이 알겠지만 정치판 앞에서 촛불처럼 꺼져가는 듯 보여 안타깝다.

최근 새누리당 대선기획단의 정준길 공보위원과 안철수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 사이에 ‘정 위원이 대선후보를 사퇴하라는 협박을 했다’는 주장과 ‘친한 친구사이의 전화 통화일 뿐’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로 양측의 주장을 대변하는 증거들을 내놓으며 설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새누리당에서는 정 위원이 경솔한 행동을 했다며 사퇴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이번 사건은 새누리당의 잘못으로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정 위원과 금 변호사가 ‘아는 사이다’ ‘친한 사이다’에 대한 친구 공방으로 논쟁이 옮겨지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86학번 동기다. 대학 동기라고 모두 친한 사이는 아니겠지만 두 사람 중 한 쪽은 친한 친구 사이라고, 다른 한 쪽은 아는 사이일 뿐 자주 연락하거나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둘 중 한 명이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금 변호사는 지난 7일 한 일간지와의 통화에서 “통화․문자메시지 수신 기록을 보니까 작년 12월 3일 정 위원이 ‘출판기념회를 한다’면서 단체 문자를 보냈다. 나는 출판기념회에 가지도 않았는데 13일 후인 12월 16일 출판기념회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단체 문자가 또 하나 왔다”고 말했다. 금 변호사는 “그 외에는 전혀 연락이 없다가 최근에 문자 한 통이 더 오고 나서 관련된 전화를 한 통화 정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문자와 전화’에 대해선 “내용에 대해 말할 순 없지만 아무튼 황당한 내용”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사이였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 위원은 이날 최근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지난 8월 27일 오후 10시 금 변호사에게 ‘태섭아, 수고 많지? 산업은행 관련 안철수 연구소 부분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정이 있다. 참고하기 바래’라는 내용이었다. 금 변호사는 3시간 뒤인 28일 새벽 1시쯤 ‘다른 사정이 뭐니, 준길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전화줘^^’라고 답문을 보냈다. 정 위원은 “잘 모르는 사람과 밤 12시에 문자를, 반말로 주고받느냐”고 했다. 정 위원은 “그 외에 다른 통화를 한 기록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이날 “내가 동기회장을 맡을 당시 네가 운영위원이었고, 2009년 ‘디케의 눈’이라는 네 저서에 서명해 나에게 선물도 하지 않았느냐”는 공개서한도 보냈다.

이쯤되면 지금까지의 정황상으로 볼 때, 두 사람이 친구 사이가 아닌지는 몰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한 사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분명히 드러난 둘 사이의 관계라거나, 만났던 흔적 그리고 새벽에 반말로 주고받은 문자 등을 종합해 보면 상식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는 사이끼리는 반말로 주고받지 않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새벽 1시에 문자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큰 결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길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전화줘^^’라는 금 변호사의 답장 문자메시지는 둘 사이를 가늠케 한다.

필자는 금 변호사의 주장처럼 정말 단순히 ‘아는 사이’인지 실체적 진실이 궁금해진다. 그 두 사람의 사이가 어떤 사이였는지 주변인들은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만일 정 위원이 ‘협박’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두 사람이 26년 전의 대학 동기일 뿐 ‘친하지 않다’고 했다면 사과하고 친구와 화해하길 바란다. 정치 때문에 벗을 버리고, 벗을 잃는 것은 정치와 권력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26년 우정을 내팽개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 현실이라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협박’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