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흉흉하고 각박한 세상이다.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는 학교폭력 사건들에 더해 연일 보도되는 성범죄 사건까지 아침에 신문을 펼치기가 무서워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은 범죄자가 1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사건이 8만 1860건이 발생했으나 아직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사건이 9189건에 이른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죗값을 받지 않고 세상을 활개 치며 다니는 범죄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옛말에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잔다.’는 말이 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잠도 편히 못 잔다는 말이다. 허나 이 말도 말 그대로 다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랜 것 같다. 외려 때린 놈이 목소리 높여 자기를 변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려고 그런 것인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부쩍 많아진 성범죄 사건. 물론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신고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성범죄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진일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익명성을 무기로 인터넷 안에서 악성 댓글을 다는 많은 사람들이 제2의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악해졌는지 참 세상 살기 무서워졌다. 아무리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찌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익명성을 앞세워 피해자에게 제2, 제3의 고통과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성범죄자에 대한 법의 처벌도 너무 안일하다. 특히 미성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같은 경우 아이가 받을 정신적, 육체적 상처와 고통에 비해 가해자가 받는 처벌은 너무도 가볍다. 조두순의 경우 12년형을 받았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그가 받는 벌은 고작 12년을 살다 나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경우 미성년 성범죄자의 경우 그 처벌의 정도가 중하다. 지난해 전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11살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에게 징역 99년형이 선고됐다. 무엇보다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평결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성범죄자 처벌은 너무도 가볍고 그 사후 관리 또한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다. 최근 부쩍 많아진 성범죄로 인해 가해자들의 화학적 거세 등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아직까지도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일부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과 여성을 단지 자신들이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밖에 생각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로 인해 여성은 늘 불안에 떨어야 한다.

더욱 불안한 것은 성범죄자 검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6.4%에서 10.5%로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흉악한 범죄로 피해자의 정신과 육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가해자들에게 선처는 어불성설이다.

범죄자들의 ‘인권’을 운운하다가 인권과 삶이 철저하게 짓밟혀진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두 번 울게 되는 사회. 일각에서 한국 사회를 ‘범죄자들의 천국’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고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등의 말로 성범죄를 합리화할 수 없다. 비단 성범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묻지마 범죄’ 또한 그렇다. 살아온 환경이 어렵고 힘들었을 수 있다. 집안 환경으로 인해 인격이 형성돼야 할 시기에 방치되어 외롭게 살아오면서 사회성이 결여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범죄가 용인되는 것도 아니요, 용납돼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성범죄를 비롯해 흉악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역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보호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양육할 수 있는 시설을 더욱 확충하고 늘려야 한다. 불우한 환경을 탓하며 사회에 불만을 품는 어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똑같은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 자라날 수 있게 교육하는 일이 중요하다.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일에 정부와 지역사회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불우한 환경, 보호받지 못한 상황에서 자란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고,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며 사회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꼭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자 함께 공존하며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해서 방관한다면 세상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흉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갖는 작은 관심과 사랑이 모이고 모이면 세상은 분명 살기 좋아질 것이다. 범죄 예방의 최선은 무엇보다 내 주변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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