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흔히 정감록을 한국의 대표적인 ‘예언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감록에 담긴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다. 특히 정감록에는 한국 역사가 간직한 문화적 코드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저자는 이 정감록의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법으로 책을 읽어나간다. 즉,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예언문화를 다각도로 훑으면서 예언문화가 나오게 된 배경을 민중의 삶에서 찾아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감록이 이전 시대의 와해를 선포하고, 구세의 영웅을 기다린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편 정감록에서 말하는 후천세계는 평화롭고 평등한 문명세상이며, 그것은 온갖 종류의 차별과 대립이 사라진 지상낙원인데, 한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저자는 동학, 증산교는 물론이고 원불교 역시 정감록 신앙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한다. 원불교의 경우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이 창립한 종교로, 인간이 물질에 매몰돼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특히 인류의 정신적 구원을 통한 천지개벽을 추구하고 있다. 바로 이 ‘개벽’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동학과 증산교의 후천개벽 또는 정감록에 담긴 새 세상의 도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정감록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계룡산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계룡산은 정감록에서 다음 왕조의 수도로 예정돼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계룡산이 왕도로 처음 거론된 것은 조선 건국 초기였다. 1392년 조선 왕조의 터를 잡을 때 후보지로 선택된 것이 계룡산이었다. 그러나 계룡산 천도 사업은 1393년 연말 문신 하륜의 맹렬한 반대로 파국을 맞았고,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이후 18세기 말부터 계룡산의 인기는 다시 급상승한다. 민심이 조선 왕조를 이반하기 시작했고 그로 말미암아 천도설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물론 계룡산이 인기를 끄는 기반은 풍수에 두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계룡산이 예언서에서 최고의 피난처로 꼽힌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계룡산의 인기가 급상승한 이유와 더불어 17세기 전반 ‘진인 사건’의 전말부터 진인이 정도령인 이유, 십승지의 비밀을 밝히고자 시도한다.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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