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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솜 기자] 청계산 여기저기에 색색의 우비가 보였다. “빨리 와! 시간이 없어.” 비를 두 손에 담은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형이 부르는 작은 동산까지 뛰어갔다. 아이의 손에 담겼던 물은 다 새나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엔 땅을 열심히 파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2일 청계산 인근에 있는 사설 숲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비가 와 아이들이 다치거나 실내에만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다르게 함께 간 황일근 서초구 의원은 여유만만이었다. 황 의원의 다섯 살 난 아들은 이 유치원에 다닌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곳이 없어 폭력성이 짙었던 아들은 숲 유치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폭력성이 사라진 것은 물론, 건강도 좋아졌다.

비 오는 날에는 ‘비’라는 놀이도구가 생겨 더 재미있게 논다는 황 의원의 말을 들으며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유치원을 찾았다. 아이들은 우비를 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아침 열기’ 시간이다. 이때는 교사와 숲 해설가, 아이들이 모여 오늘 하루 어떤 곳을 갈지 무슨 활동을 할지 정한다.

먼저 아이들은 숲 해설가와 함께 산을 올랐다. 산에 가는 것도, 가지 않고 실내에서 활동을 하는 것도 스스로 정했다. 산으로 출발하기 전, 대장과 부대장을 뽑았다. 대장은 줄의 맨 앞쪽에, 부대장은 맨 뒤에 서서 친구들을 이끌었다. 물론 양 끝에는 교사와 숲 해설가가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도중 숲 해설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얼굴에 비를 맞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한 번씩 물었다. “느낌이 어때요?” 아이들은 “차가워요” “으악! 코에 다 들어가요”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산에 가지 않은 아이들은 실내에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밖에서 놀고 있었다. 박예준(6) 군은 페트병에 물을 길어 어딘가에 열심히 붓고 있었다. 말 그대로 ‘물 긷는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박 군이 요즘 가장 재미있게 하고 있는 놀이다.

한 아이는 흙을 열심히 파고 있었다. 예전에 이 장소에 호박, 자동차 등 온갖 물건을 묻어놨단다. 옆에 있던 친구도 자동차를 꺼내겠다며 함께 땅을 열심히 팠다.

뛰어다니다가 엎어질 때는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주위에 교사 등 호소할 사람이 있으면 서글피 울지만, 없을 때엔 툭툭 털고는 일어난다.

이 같은 상황은 처음 온 부모들에게 어렸을 적의 향수를 부르거나, 충격적인 광경으로 보일 수 있다. 시골에서 자란 황 의원 같은 경우는 전자에 속한다. 황 의원은 “물론 처음에는 아이가 뛰어놀다가 다칠까봐 걱정도 했다”며 “요즘엔 아이의 무르팍이 까져 피가 난 채 와도 ‘오늘 내 아들이 잘 놀았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온 이준호(42, 남,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씨는 아이들과 섞여 신나게 놀고 있는 딸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쫓아다녔다. 이 씨는 “원래 다니던 유치원을 다니기 싫어해 다른 유치원을 구하던 중 알아보러 왔다”며 “딸이 신나게 놀아서 기분은 좋지만 다칠까봐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천막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오이에 된장국 등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보이지 않았지만 뛰어 노느라 기진맥진한 아이들은 맛있게 밥을 먹었다.
아이들의 옷에는 어느새 흙탕물이 묻어 있었다. 황 의원은 “비싼 옷을 입히나 싼 옷을 입히나 흙 묻혀오는 것은 똑같다”며 아이들 옷 입히는 데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도 아이들의 놀이는 끝이 없었다. 스스로 놀이와 규칙을 정하고 참여하기도, 싸우고 화해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틈을 주지 않은 채 75명의 아이들은 숲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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