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울 땐 직언으로, 국난 앞에선 목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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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이순신, 권율, 곽재우는 알아도 1592년 8월 18일 금산성 전투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절했던 중봉조헌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는 스승이었던 율곡 이이와 함께 문묘에 배향된 동국 18현 중 한 분이다.

중봉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그래서 공부할 때는 전심(專心)으로 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무리 밖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도 홀로 단정히 앉아 글을 읽었다. 또 친모가 중봉 나이 10살에 돌아가시고 이후 계모가 아무리 그에게 까다롭게 굴어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새어머니를 대하며 끝까지 부모 봉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효심에서 비롯된 전심 어린 글공부는 평생 그를 책에 파묻히게 했다. 농사를 지을 때도,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도 중봉은 언제 어디서나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독서광이었다.

또 중봉은 오직 배운 것을 실천했을 때만이 학문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하지 않는 학문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한 그의 지조였다.

중봉은 실천궁행의 표본이었던 것만큼 언사도 강직하기로 유명했다. 그의 직언은 학문의 깊이에서 나온 자신감이요, 충(忠)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거듭된 상소는 선조 임금의 노여움을 사 함경도 길주에 유배되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그는 옥천으로 내려와 은거하게 된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 각지에서 중봉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그들이 임진왜란 때에 중봉과 함께 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주역이 된다.

[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이순신, 권율, 곽재우는 알아도 1592년 8월 18일 금산성 전투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절했던 중봉조헌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는 스승이었던 율곡 이이와 함께 문묘에 배향된 동국 18현 중 한 분이다. 중봉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그래서 ‘공부할 때는 전심(專心)으로 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무리 밖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도 홀로 단정히 앉아 글을 읽었다.

또 친모가 중봉 나이 10살에 돌아가시고 이후 계모가 아무리 그에게 까다롭게 굴어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새어머니를 대하며 끝까지 부모 봉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효심에서 비롯된 전심 어린 글공부는 평생 그를 책에 파묻히게 했다.

농사를 지을 때도,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도 중봉은 언제 어디서나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독서광이었다. 또 중봉은 오직 배운 것을 실천했을 때만이 학문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하지 않는 학문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한 그의 지조였다.

중봉은 실천궁행의 표본이었던 것만큼 언사도 강직하기로 유명했다. 그의 직언은 학문의 깊이에서 나온 자신감이요, 충(忠)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거듭된 상소는 선조 임금의 노여움을 사 함경도 길주에 유배되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그는 옥천으로 내려와 은거하게 된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 각지에서 중봉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그들이 임진왜란 때에 중봉과 함께 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주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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