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위기에 처한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신릉군은 식객들과 전차 백 대를 준비하여 진나라 군영을 공격하기 위해 위나라를 출발했다. 신릉군은 동쪽 문에서 자신의 식객으로 문지기인 후생을 만났다. 그들이 작별을 할 때 후생은 자신은 함께 가지 못하니 공의 분투를 빈다는 짧은 인사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신릉군은 몇 리쯤 나아갔다. 그는 아무래도 후생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지금까지 후생에게 할 수 있는 호의를 다 베풀었다. 그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죽을 곳으로 가고 있는데 후생의 태도가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있었는가?” 그렇게 생각한 신릉군은 곧장 되돌아갔다. 후생은 되돌아온 신릉군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반드시 되돌아오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서두를 꺼낸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인재를 소중히 대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당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진나라의 진영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 코앞에 고기를 던져 주는 것과 다름없는 짓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도움을 드리지 못한다면 제가 어찌 당신의 식객이겠습니까? 제가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이번 출전에 앞서 아무런 의견도 드리지 않은 것은 공께서 반드시 되돌아오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릉군은 후생의 말에 정중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후생은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조용히 말했다. “조나라 진비 장군의 병부(전국시대 군사를 움직이는 할부)는 언제나 왕의 침실에 놓여 있습니다. 왕이 가장 총애하는 여희라면 왕의 침실에 자유롭게 드나들 것입니다. 그녀라면 병부를 쉽게 훔쳐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여희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아 달라고 삼 년 동안 왕과 신하들에게 부탁하였고, 나름대로 그들이 노력은 하였으나 그 뜻은 이루지 못했잖습니까? 그러자 여희는 당신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 부탁을 했습니다. 당신은 곧바로 식객들을 풀어서 여희의 원수를 갚게 했고 또 그 목을 잘라서 여희에게 주지 않았습니까? 그때 여희는 감격하여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결코 말만으로 그칠 여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여희에게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병부에 관한 일을 당신이 부탁하면 여희가 반드시 훔쳐다 줄 것입니다. 그 병부를 가지고 가서 진비의 군대의 지휘권을 빼앗아 진나라 군대의 포위를 푸십시오. 그 일은 마치 춘추 오패와 비견할 만한 공이 될 것입니다.”

신릉군은 후생의 말에 따랐다. 여희는 기대한 대로 병부를 훔쳐내어 신릉군에게 가져왔다. 신릉군이 병부를 가지고 출발하려 하자 후생이 다시 주의를 주었다.

“원정 중에 장군은 전결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설령 왕명일지라도 거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비는 병부가 확실하더라도 지휘권을 넘기는 일을 거부하고 왕에게 확인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난처하게 됩니다. 그러니 제 친구 도축업자인 주해(朱亥)를 데리고 가십시오. 주해는 힘이 세기로 유명한 자입니다. 진비가 지휘권을 넘기면 좋지만 만일 거부할 경우에는 주해를 시켜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합니다.” 그 말에 신릉군이 눈물을 흘렸다.

후생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아니오. 진비는 뛰어난 노장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의 요구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그런 뒤 신릉군은 주해를 찾아가 정중하게 동행하기를 청했다. 주해는 기쁜 얼굴로 신릉군을 맞았다. “저같이 신분이 낮은 도축업자를 전에도 몇 번이나 찾아와 주셨는데 어떤 보답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찮은 제 존재가 별로 쓸모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께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은 몸을 바쳐서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주해는 동행을 허락하고 그를 따랐다. 신릉군은 다시 후생을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가 답했다. “이 늙은이는 너무 늙어서 따라가지 못합니다. 저는 당신이 진비의 진영에 도착하는 날 당신이 계실 북쪽을 향해 자결함으로써 전송을 대신하겠습니다.”

마침내 신릉군은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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