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않는 1초… 女 펜싱 신아람 결국 눈물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통한의 1초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신아람(26, 계룡시청)은 끝내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상대 선수가 세 번이나 공격하는 동안 마지막 1초가 흐르지 않았다. 명백한 기계 오작동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엉터리 판정. 역사에 남을 만한 오심이었다.

신아람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에페 여자 개인 4강전에서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 5-5로 우열을 가리지 못해 연장에 들어갔다. 신아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져 1분 동안 점수를 잃지 않으면 승리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30초간 하이데만을 견제하며 점수를 허용하지 않은 신아람은 24초를 남기고부터 5차례 동시타를 기록하며 동점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지막 1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1초를 남기고 신아람과 하이데만은 동시타를 두 번이나 기록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결국 신아람이 1초간 하이데만의 공격을 세 번이나 막아내는 황당한 모습이 연출됐다. ‘1초’에서 멈춰버린 타이머 덕에 하이데만은 결승점을 뽑아낼 수 있었다. 통한의 패배였다.

상식 밖의 일이었다. 누가 봐도 1초 이상은 지난 듯했다. 당황한 국제펜싱연맹 심판진은 30분간 논의했지만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대회에서조차 볼 수 없는 미숙한 경기 운영이었다.

코치진이 강력히 항의하는 동안 1시간 넘게 피스트에 홀로 앉아 울던 신아람은 취재진의 질문에 “내가 이긴 건데 너무 억울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며 조용히 대기실로 돌아갔다.

억울한 판정과 긴 항의 과정에 지쳐버린 신아람은 이어 열린 3~4위 결정전에서도 패해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런던올림픽만을 바라보며 4년을 준비한 신아람의 모든 노력과 국민의 성원이 오심 하나로 날아가 버렸다. 펜싱 강국의 텃세에 유럽에서 한국 선수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심판들은 양심을 속였지만, 관중들은 승자를 알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준결승부터 모든 과정을 지켜봤던 관중들은 한마음으로 신아람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오심 덕에 결승에 올라간 하이데만도 판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날 경기를 마친 하이데만은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심판판정에 대해 꼬집었다.

하이데만은 빌트지에 게재된 인터뷰를 통해 “펜싱의 문제다. 1초가 남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1초 99인지, 0.99초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1초 99라면 몇 번을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서 “가장 큰 문제는 시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그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이데만은 “나는 한국 사람의 분노를 이해한다”면서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유독 오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한국 선수들이 고스란히 짊어졌다. 박태환(23. SK텔레콤)이 그랬고 조준호(24, 한국마사회)가 그랬다.

박태환은 29일 영국 런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1위로 터치 패드를 찍었지만 부정 출발했다는 주장으로 실격 처리됐다가 번복되는 상황을 맞았다.

조준호 역시 지난달 29일 엑셀 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남자 -66kg급 8강전에서 에비누마 마사시(일본)에게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받고도 심판위원장의 개입 이후 판정이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64년 만에 다시 찾은 ‘기회의 땅’ 런던은 다잡은 기회마저 앗아가는 심판의 판정으로 얼룩졌다.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가 끊임없는 오심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오심이 신아람의 발목을 잡을 때 이 불편한 추측은 명백한 사실이 됐다. 가장 공정해야 할 올림픽은 런던에서 갈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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