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시장급랭…`정권말' 정치권 반대도 겹쳐
"졸속추진ㆍ헐값매각" 논란에 노조 눈치보기까지

(서울=연합뉴스) 금융권에서 추진되는 민영화와 기업매각이 줄줄이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 침체로 업종을 불문하고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정권 말에 접어들면서 정부 당국의 추진동력이 한없이 약해진 것도 한 원인이다.

민영화나 매각 대상 기업에선 졸속추진이나 헐값매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기업 노동조합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반대도 거세다.

◇대우조선, 차기정권으로…KAIㆍ쌍용건설[012650]도 불투명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선업계의 `알짜'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042660] 매각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대우조선해양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매각에 소극적인데다 2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캠코)도 매각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캠코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서 "현재 주가, 거시경제 상황, 잠재적 투자자 등 매각 환경이 불리해 현 시점에선 매각 여건의 개선 추이를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책금융공사가 이날 입찰공고를 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역시 매각 전망이 불투명하다.

삼성테크윈[012450], 현대자동차[005380], 두산[000150] 등은 KAI 지분을 내다 파는 입장이라 입찰에 뛰어들기 어렵다. 공사는 주요 방위사업체인 KAI를 사모투자펀드(PEF)에는 넘기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대한항공[003490]이 KAI 인수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KAI의 사업구조상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다.

쌍용건설은 5차례 입찰을 시도한 끝에 이랜드그룹 한 곳만 이름을 내밀었다. 그나마 캠코가 `꼼수'라는 지적까지 받아가면서 예비입찰이 지나도 최종마감일까지 입찰할 수 있도록 했지만 모두 외면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랜드가 쌍용건설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대우건설처럼 인수자가 망가지는 `승자의 저주'만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은행이 주관하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도 다음 달 본입찰을 앞두고 있지만 잔뜩 얼어붙은 인수합병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매각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도 부정적…노조 반대도 의식
노조와 정치권의 반대는 금융권의 민영화와 기업매각을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금융지주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 주식을 상장하는 기업공개(IPO)는 국회의 보증 동의가 필요하지만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산은의 IPO가 민영화를 전제로 한 게 아니냐며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강만수 산업은행장이 "주식을 민간에 파는 IPO와 민영화는 완전 별개"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 주라도 파는 건 민영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신동우 의원), "정책금융 기능을 떼고 결국 민영화하는 것 아니냐"(유일호 의원)는 등 IPO와 민영화를 싸잡아 반대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우리금융[053000]은 3차례에 걸친 매각 시도가 불발되자 정부가 공식적으로 "당분간 추가 매각 시도는 없다"고 선언했다. 지난 2차례의 매각 불발이 정치권의 반대에서 비롯된데다,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는 차기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KAI 매각에 대해서도 미심쩍어하는 여야 의원이 많다.

김재경 의원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KAI의 독점적 지위를 거론하며 "인수 업체로선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할 테고, 그런 점 때문에 KAI의 역동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노회찬 의원은 "한진그룹이 가진 경복궁 인근 학교 옆 부지에 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해주려고 정권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다"며 "KAI의 매각도 (인수 후보가 대한항공인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다그쳤다.

정치권이 정권 말 민영화나 기업 매각에 이처럼 부정적인 것은 노조의 표심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우리금융 매각을 두고 우리금융과 인수 후보인 국민은행 노조가 모두 구조조정을 우려해 극렬히 반대했으며, 쌍용건설이나 KAI 노조도 매각에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정권 말 무리하게 민영화를 졸속으로 추진하고 기업을 헐값에라도 매각하려는게 현금을 확보하려는 `다른 목적'때문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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