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과 함께 현 정권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는 숨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만 며칠을 못 넘기고 만다.  

이상득 전 의원의 전격 구속은 그의 5년 신의(信義)를 저버린 형님권력에 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였다. 그의 남산보다 더 큰 추가 의혹이 연이어 불거짐과 동시에, 15년간 대통령의 가방 역할을 해 온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저축은행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의혹은 의혹을 넘어 청와대 자체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으며, 나아가 대선자금 수사로 자연스럽게 확대돼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자가 시론을 통해 수차에 걸쳐 지적했듯이 잘못된 신앙과 하나 된 지도자의 곁길 신앙이 가져온 결과가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참으로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실학자이며 사상가이기도 한 다산(茶山)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목민심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外侵)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로 민심이 돌아서는 것이다”고 말이다. 오늘날 이 시대 이 정권을 두고 다산은 미리 말해 놓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더 큰 문제가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박근혜 전 위원장을 두고 어떤 인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대통령이 아닌데도 저러니 대통령이 되면 정말 걱정이다”며 원색적 비난을 했다면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또 새누리당 대표는 “박 전 위원장의 사당화 지적에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이 있었다면, 새누리당은 이미 사당화된 정당이라는 말과 같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처럼 이미 모두가 인정하며 기정사실화 됐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괜히 형식적이고 구태의연한 변명으로 넘길 사안은 적어도 아니라고 봐진다. 자신들만 부정할 뿐 측근은 물론 당원 그리고 야당과 함께 온 국민이 공감하는 불통과 아집, 독선의 예비지도자를 지금 국민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18년 유신의 흔적을 머금은 인물로서 분명히 조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박 전 위원장의 말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오늘날 국민들이 일정 부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나 5.16쿠데타 자체와 18년 유신독재라는 원론적 문제는 엄연히 구별돼야 함에도 계속 고집과 아집을 부리는 발언을 가는 곳마다 하고 있음은 뭔가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지금은 더구나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 중동의 철권통치자들로 인해 무고한 목숨이 희생당하는 현실을 지구촌은 바라봐 왔다. 독선과 독재와 불통과 같은 마인드는 이 시대와는 선을 그어야 하는 구시대 유물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하루속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시험대에 올려져 사상부터 다시 검증 받게 되는 처지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음을 감 잡아야 할 것이다.

정두언 의원 체포 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도 쇄신과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당이 부결에 앞장섰으면서도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이미 독재에 준하는 권력이 돼버린 사당화된 정당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결에 책임을 지겠다던 원내대표는 산적한 현안처리를 핑계로 임시국회 회기까지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대선 정국을 핑계로 임시국회를 끝으로 과연 끝을 낼 것인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의원총회를 통해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로 인한 수습책을 의결하기 위한 의원총회만 해도 그렇다. 의원들의 수습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박 전 위원장의 입구에서 가진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일치한 의견으로 의원들의 의견들을 정리해 최고의원들에게 위임하는 형식으로 마무리했다는 자체가 이미 새누리당은 공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사당화 됐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만 셈이다.

명종 때 수렴청정을 하며 그야말로 여걸이자 여성정치가로 명성이 나 있는 문정왕후가 생각난다. 을사사화 등 어지러운 세상에서 문정왕후와 그의 동생 윤원형 그리고 윤원형의 애첩인 정난정에게만 잘 보이면 벼슬길에 오를 수 있고 자기 영달을 누릴 수 있던 시절, 유독 그와 다른 길을 걸어간 선비가 있었으니 오늘날 우리의 귀감이 되고 이 시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며 법고창신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감사하다.

그 선비는 바로 ‘을묘 사직소(일명 단성소)’로 유명한 ‘남명 조식’이다. 그는 지리산 자락에 ‘산천재’라는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조정을 비난이 아닌 비판하며 늘 조정을 견제해 온 그야말로 위대한 정치가요 민족의 선각자였다. 한 나라의 왕도 그의 식견과 지혜와 용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인물!

그의 삶이었고 또 실천이었던 장자(莊子)에 나오는 글귀를 적어본다. ‘연묵이 뇌성(淵默而 雷聲)- 깊은 연못과 같이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레처럼 소리친다.’

오늘날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선 벼슬과 영달보다 자기희생과 소신으로 선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는 참된 선비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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