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세계화된 남쪽 수준에서 보면 밋밋한 것에 불과하지만 최근 평양중앙TV를 통해 방영된 평양 모란봉 악단의 공연은 북의 주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출연자들은 북의 전통을 뛰어 넘는 자못 세련된 의상을 입고 전례에 없는 파격적인 속살의 노출을 선보였다. 그런 모습을 북은 지금까지 관영 방송을 통해 일반 주민들에게 내보낸 일이 없다. 과감한 시도다. 김정은의 과감한 시도가 분명하다. 밀실의 퇴폐 연회에 익숙해졌을 북의 권력 실세들에겐 하등 놀랄 것도 없었을 것이지만 방송을 통해 그런 생경한 모습을 본 주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반응은 모르긴 몰라도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일인가’ 하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북을 아는 우리가 보기에도 해괴한 것은 ‘철천지원수’라던 ‘미제(美帝)’의 영화를 배경 영상으로 깔고 역시 그 음악을 연주했으며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랜드의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를 공연에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미키마우스는 코카콜라만큼이나 공산주의가 싫어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성을 지닌다.

배경 영화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각본을 쓰고 동시에 주연을 한 영화, 복서 로키 발보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로키의 네 번째 시리즈 ‘로키4’다. 그 영화에서 로키의 로우드워크(Roadwork)와 그가 소련 선수를 때려눕히는 장면들을 배경에 깔았다. 아무리 예술이라지만 옛 소연방(蘇聯邦)의 중심 국가였던 러시아가 볼 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인데 그 점을 북은 불사(不辭)한 느낌이다. 한편 악단의 공연 음악은 로키의 주제곡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My Way) 등이었다. 이런 저런 것들을 종합해볼 때 모란봉 악단의 공연은 이른바 ‘주체 조선’의 예술을 공연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의 문화’를 공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심로원려(深謀遠慮)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니 결코 소홀히 보아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정은의 직접적인 지도 감독 연출이 아니라면 북의 누구도 이렇게 ‘엄청나고 뚱딴지같은 사고’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란봉 악단 자체도 김정은이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공연이 끝나고 자리를 뜰 때 만면에 웃음을 띠고 출연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 공연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에 걸쳐 북의 일반 주민에게 방영됐다. 김정은이 참관한 공연은 모란봉 악단이 조직된 후 처음 가진 시범공연이었다.  그 자리에는 북의 실세 최고 지도자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했다. 이는 철저히 기획된 깜짝 쇼다. 그렇기에 김정은은 회심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연에서 연주된 생경한 음악과 무대 배경에 깔린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북의 주민들은 공연을 처음 보는 순간 그저 어안이 벙벙했을 뿐이었을 것이며 그것이 ‘미제의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하루아침에 변한 세상에 대해 분명 망연자실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놀라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국의 조야(朝野)에서 특별히 논평이 나온 것은 없다. 하지만 김정은이 모란봉 악단을 통해 보낸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이모저모로 따져보고 심사숙고하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북에서 보낸 메시지의 중대성으로 말하면 김정은이 모란봉 악단을 통해 보낸 뉴버전(New Version)의 메시지는 미국이 해석하기로는 그의 아버지가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그것에 비해 결코 무게가 가벼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도발이 북의 기습이었듯이 모란봉 악단이 철천지원수라던 미국문화를 공연한 것 역시 김정은이 후계 세습 권력을 다지기에 혼란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방심의 허를 찌른 일종의 기습이다.   

모란봉 악단이 미국 문화를 공연한 것만큼이나 기습적인 또 다른 기습적인 소식은 북의 선군(先軍) 정치의 선봉장 북한군 실세 리영호 차수가 숙청된 일이다. 북의 방송은 이례적인 속보(速報)로 그가 ‘신병관계’로 모른 직무에서 해임됐다고 발표했다. 공식적인 발표는 그렇지만 숙청이 맞는 것 같다. 1인 종신 권력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충성을 바치는 추종자들에게는 평생토록 무엇인가는 불만이 없는 직책을 부여하는 체제에서 이렇게 알몸으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김정은의 군부 멘토였다. 그 위상과 권력, 신임을 과신하고 뭔가 김정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든지, 실세들 간의 권력 투쟁에서 밀렸든지 했을 것이다. 아니면 선군 정치로 군부에 간 권력의 우위를 당으로 회수해 당의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데 그가 걸림돌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이유들로 리영호가 숙청이 됐다면 그는 아마도 지금 신병마저 부자유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기가 쉽다.

북이 리영호의 숙청 사실을 해임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해 신속히 발표한 것도 그가 숙청당한 것이 맞다는 생각을 더욱 굳혀준다. 우유부단한 지체보다는 신속한 발표라야 리영호의 뿌리들에게 저항이나 동요의 틈을 주지 않는 ‘제압’의 효과가 있을 것이며 아울러 경고의 의미도 빛을 발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른다. 언제 어떤 사건이 뒤따를 것인지. 김정은이나 리영호를 제거한 실세들은 이 점에 대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떻든 모란봉 악단의 공연과 리영호의 숙청으로 북의 주민들이 받았을 충격은 마찬가지겠지만 묘한 대조를 이룬다. 모란봉 악단의 공연은 개혁 개방에 대한 강력한 몸짓이며 그 몸짓은 특히 미국을 향하고 있다. 리영호의 숙청은 개혁 개방이 김정은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순류(順流)라고 할 때 그에 거슬리는 역류(逆流)와의 싸움이었다. 북의 군부는 아무래도 개혁 개방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역류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볼 때 적어도 북의 순류와 역류의 싸움 일합(一合)에서는 순류가 이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에는 순류도 있고 역류도 있으며 순류와 역류가 싸울 때 와류(渦流)도 생긴다. 김정은은 겉으로 여유만만해 보이지만 그가 아직 권력의 와류를 확실히 건넌 것은 아니다.

그가 와류를 확실히 건넜을 때는 모란봉 악단의 파격을 조직한 솜씨로 보아 그는 북의 주민들에게 개혁 개방에 따른 서프라이즈 쇼를 자주 선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같은 깜짝쇼들이 우리에게 더 이상 해괴하다거나 놀랍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북은 우리와 미국 그리고 세계에 보다 가까운 나라로 변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과연 그렇게 될지가 문제이며 주목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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