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저녁


정수자(1961~  )


혼절 한 번 없이 그대가 간다기에
통정 한 번 없이 가을이 간다기에
서둘러
밥을 짓다 말고,
다시 받네
저무는 일

‘혼절’과 ‘통정’. ‘혼절’을 할 정도로 마음을 다할 수 있다면, 그래서 ‘통정’을 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참으로 열심히, 열심히 살아온 삶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삶이 어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삶이 있겠는가. 마음을 다 했어도, 늘 다 하지 못한 듯한 미진함이 자리하고 있는 마음. 그러므로 헤어지게 되면, 늘 다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더욱 서운해지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이 아니겠는가.
혼절 한 번 없이 그대가 간다기에, 통정 한 번 없이 가을이 간다기에, 그래도 따뜻한 밥이라도 같이 해야지 하는 마음에 서둘러 밥을 짓다가, 그렇게 저물고 마는 일.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 그 이별 다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로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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