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물은 공기나 빛과 더불어 사람의 생존에 기초적인 필수 요건이 될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사람은 살지 못한다. 그중에서 공기나 빛이 없는 상황은 사람이 흔히 겪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실재 여부를 알 길이 없는 지구의 종말적 상황에서의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물이 없는 상황은 연례행사처럼 흔히 겪는다. 바로 가뭄을 통해서다. 

가뭄으로 고통을 겪을 때는 왜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세계적인 큰 강 언저리였는지 실감하게 된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나일강이나 유프라테스, 인더스, 황하와 같은 큰 강 언저리로 알려져 왔다. 이른바 대하문명(大河文明)이다. 사람은 물을 마셔야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물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강에는 또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물고기 등의 수생식물이 많다. 더구나 강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유기물질의 운반체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왜 인류 문명이 큰 강 언저리에서 발상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 같은 이치를 한반도에 적용해본다면 우리 조상들이 먼 북쪽이나 남쪽, 어디서 왔던지 이 반도에 도착해 맨 먼저 생활 근거지로 선택한 곳은 물이 풍부한 곳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물이 쉽게 마르는 이름 없는 어느 개울이나 실개천이 아니라 수량이 항시 넉넉히 흐르며 기후가 비교적 온화한 한강이나 낙동강 대동강 금강 만경강 동진강 예성강 등의 강변이나 그 어구가 됐음직하다.

서구 학자들의 눈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삶을 관류해온 한반도의 이런 강들이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큰 강들에 비해 길이가 작았다 해서 그 강들이 사람을 위해 지닌 가치가 적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튼 대지를 메마르게 하는 가뭄도 걱정거리지만 홍수나 물의 폭류(暴流)도 걱정거리이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큰 강변이나 그 어구에 생활 터전을 잡고 사는 것은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잘 안 됐을 때 역시 그 강이 주는 혜택만큼이나 큰 모험을 감수하고 사는 생활일 수밖에 없다. 폭우가 쏟아져 강이 넘치면 사람의 목숨도 위태롭고 사람이 애써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도 흔적 없이 휩쓸려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의 범람(氾濫)은 땅을 비옥하게 해주므로 범람에 혼이 났을지라도 농경에 알맞은 그 자리를 사람은 쉽게 떠날 수가 없다.

대신 모든 지혜를 동원해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생활 조건을 개선하면서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이 말하자면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應戰)이다. 인간은 자연의 도전에 대해 돌을 굴려 산 위로 올리려다 미끄러져 번번이 제자리로 되돌아오고 마는 ‘시지프스’의 도로(徒勞)와 같은 실패는 반복할지언정 절대로 아주 굴복하지는 않는다. 이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치열한 응전의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태동하고 발전해왔다는 것이 영국 출신 역사학자 토인비의 견해인 것이다.

날이 두서너 달 가물자 대지가 타들어가고 소동이 일었다. 관개 시설이 잘 된 넓은 뜰 김제(金堤) 만경(萬頃) 부안(扶安) 평야는 비교적 잘 견디어 냈지만 비가 내려야 농사가 가능한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큰 고통을 겪었다. 저수지 물이 말라 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졌다. 물고기들은 진흙 깊숙이 몸을 숨겼다. 사람만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큰 댐들의 수위조차 눈에 띄게 낮아지고 그 바람에 강들의 수량도 수돗물의 절수(節水)가 강요될 만큼 줄어들었다. 홍수와 강의 범람은 사람에게 순간에 큰 피해를 입히지만 가뭄은 오래 지속되면서 서서히 땅을 말리며 사람의 애를 태운다.

이렇게 가뭄이 지표(地表)를 메마르게 하면 최후의 희망은 땅을 파고들어 지하수를 꺼내 쓰는 일이다. 실제로 많은 곳에서 군부대까지 동원해 관정(管井)을 팠다. 참으로 땅속은 오묘한 곳이어서 그 속에 석유와 철 같은 지하자원, 금 은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은 물론 화산으로 분출되는 용암과 불도 있고 물도 있다. 뿐만 아니라 땅은 고구마 감자 무 당근과 같은 구근(球根)들을 품고 길러내어 사람을 먹여 살린다.    

어쨌든 지하수를 퍼내어 써야 되는 상황이 되면 가뭄이라는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도 한계에 도달한 것이 된다. 아무리 관정을 파 그 물을 마시고 마른 논밭에 물을 대어도 가뭄을 이겨낼 수는 없다. 이쯤 되면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다. 옛날에 우리 임금들은 가뭄이 들어 민심이 술렁이고 폐농(廢農)이 우려되면 제단을 쌓고 그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르며 빌었다. 하늘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던 임금들의 허약하고 처절한 굴욕이다. 그것이 바로 기우제(祈雨祭)다.

그 기우제로 얼마나 비를 내리게 했고 가뭄을 해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임금을 무릎 꿇린 가뭄은 홍수나 강의 범람보다 더 무서운 인간에 대한 도전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비를 내려달라고 가뭄 때 하늘에 무릎을 꿇고 빈 임금이 홍수나 강의 범람을 멈추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는 기록은 없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가뭄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을 반사적으로 유도해내지만 결국은 비가 내려야 가뭄이 끝나고 궁극적인 가뭄의 해결이 이루어진다. 그 반대의 홍수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큰물 대비를 잘하고 치산치수를 잘 해도 홍수와 범람은 나타나기 마련이며 그 해결 역시 비가 멎고 볕이 나야 이루어진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단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었다. 꿀처럼 달고 단 귀한 비였다.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고 시들던 나뭇잎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런데 도전이 사라지면 사람은 긴장이 풀어지고 게을러진다.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 못할 큰 가뭄이나 큰 홍수와 같은 이변의 큰 도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응전의 노력을 평시에 게을리하면 사람은 항상 실패를 거듭하는 ‘시지프스’의 신세를 못 벗어난다. 가뭄이 끝났지만 또 있게 될 다른 가뭄, 또 큰물에 유비무환의 대비를 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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